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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4
    드라마에 빠진 가을..




0.

나는 무슨무슨맨 종류의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슈퍼맨은 일단 그 패션에서부터 비호감이고, 스파이더맨은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서도 히어로로서의 삶의 고단함이라는 설정 자체가 불쾌하다. 배트맨은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꽤나 멋들어진 영화로 거듭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거대자본가로서의 부르스 웨인과 고담시의 수호자 배트맨이란 조합은 왠지 위선적인 느낌이다. 엑스맨들은 마냥 유치해서 싫고, 아이언맨이나 핸콕 같은 건 아예 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볼 계획이 없으니 따로 뭐라 할 말이 없다.

굳이 히어로 장르가 아니더라도 어느 등장인물이 영웅시 되는 것에 대해 지독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마지막 부분에서 막시무스의 죽음 이후 갑자기 웬 여자가 나서서 영웅의 죽음을 헛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 부분만 없었어도 나는 그 영화를 지금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게 봤을지 모른다.

히어로로서 사는데 대한 인간적인 고뇌를 적당히 가미하여 현실적으로 묘사하면 할수록 그 싫은 느낌은 더해진다. 어차피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먼 진부한 설정을 어떻게든 말이 되게 설명하려 드는 것이 훨씬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그런 느낌. 아예 무협지 같은 설정이라면 차라리 마음편히 즐길 수 있을텐데..

아뭏든 나는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 생각한다.



1.

요 몇주 전부터 회사 내에서 대화가 좀 통한다고 생각되는 이들끼리 비정기적으로, 허나 대충 주 1회 정도의 빈도로 술자리를 갖고 있다.

거창하게도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부터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고, 어줍짢게도, 누군가 우리 대화를 들을까 참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나,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여러 이론들을 겁없이 인용하며 직장 상사와 동료들을 무참히 분해하고 조립하고.. 뭐 그러는 중이다.

대화의 소재는 종종 우리 자신이 될 때도 있는데, 나름 나 자신에 대해 꽤 많이 객관적 시각으로 보아왔었다고 자부하면서도 종종 멤버들의 예리한 지적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리하여 최근 내가 가진 생각들 중 내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몇 가지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해보고 있는 요즘.



2.

미드, 일드 보는 재미에 빠져 사느라 국내 드라마는 공공연히 개무시를 하고 있던 참이었더랬다.
그랬던게.. 최근에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화원" 때문에 양상이 바뀌어.. 닥본사 모드다.

가만 보니 둘 다 천재를 다루는 얘기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작은 강건우(장근석 분)나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문근영 분)이라는 인물은 모두 범인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고 묘사된다.

남들과 다른 어떤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점에서, 천재.. 라는 것이 모양을 달리한, 일종의 히어로물로 치환 가능한 것이라면 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싫어해야 마땅하겠거늘.. 곰곰 돌이켜보니 나는 이런 종류의 천재를 묘사한 이야기들을 무지하게 좋아하고 있었다. 굿윌헌팅이라든가.. 사기열전에서 손빈에 대한 이야기나.. 삼국지의 제갈공명 캐릭터, 아마데우스는 뭐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김용의 사조삼부곡 가운데에서도 곽정보다 양과의 캐릭터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이런 종류의, 소위 재능있는 인물상에 호감을 느끼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예술과 학문적 재능을 타고 나는 것과 물리적 신체적 힘의 남다름을 같은 맥락에서 볼 것인가 하는 여지는 있겠지만, 구분하여 생각하더라도 왜 어떤 종류의 재능에 대해서는 호감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른 한편에 대해서는 그러한 설정만으로도 짜증을 내고 불쾌해 하는지, 그 사이에 내가 놓치고 있는 어떤 중요한 맥락이 있는건 아닌지..



3.

천재를 다루는 모든 창작물은 필연적으로 천재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는 다른 많은 범인들을 필요로 한다. 그 천재를 더욱더 두드러지게 만들려면 천재 자신이 좀 더 센 능력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다른 범인들이 위치한 그라운드 레벨을 끌어내리면 된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은 어쩌면 평균 정도도 되지 못하는 수준들로 묘사된다. 캬바레 출신의 트럼펫, 이제는 치매 노인인 오보에 주자, 고교 중퇴 소녀의 플룻, 20년의 공백을 갖는 첼로 전공 전업주부.. 강마에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이들은 - 자신의 꿈을 제대로 파악도, 꾸어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실현하기 위한 재능도, 가능성도 없는 - 쉽게 말하면 "루저"인 셈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화원들과 도화서 생도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4.

내가 주성치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그의 영화에서 세상의 "루저"들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을 느끼면서부터였고, 2MB 정권과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들이 이 사회의 "루저"들과 함께 공존하겠다는 의지나 배려가 없음이 너무나도 명명백백하기 때문이다.

천재와 히어로 사이의 뭔가 석연치 않은 내 일관되지 않은 감정과 마찬가지로 "루저"를 대하는 나의 개념 역시 정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가끔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곤 했었는데, 과연 나 자신이 진정 "루저"를 향한 애정을 가지고 그런 소리를 했는가 묻는다면 글쎄..

나는 위키피디아를 애용하면서도 네이버 지식인의 예를 들어 집단 지성이란 것의 효용에 한계를 두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바보같은 답변들을 보며 누군지도 모를 이를 향해 조소와 쌍욕을 날린다. 나는 똑똑한 개개인이 모였을지라도 그 모인 대중이 보이는 행동양식에 대해서는 지극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예측을 한다. 이 나라 국민의 아파트에 대한 집착을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 가능하다고 믿는다. 지지리 궁상으로 하루 벌어먹기도 힘에 부친 이들이 한나라당을 찍는 행동을 비난하고 저주한다. 트로트를 싫어하고, 어쩌다가 출발 비디오 여행 할 시간에 전국노래자랑 봐야되는 상황을 몹시 고역스럽게 여기며, 전국노래자랑에 나와 오버하는 이들을 혐오하고 경멸한다.

이런 내가 이 사회의 "루저"들을 향해 애정을 요구한다는 건..



5.

앞에서 얘기한 회사 술자리 멤버 중 하나는, 내가 지금의 종교관을 갖기까지는 소시적에 읽었던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말하길, 소설속 주인공 치점 신부가 세속적 기준에서 바라볼 때 "루저"였기에 내가 쉬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 한다. 비루한 성장기를 거쳐 끝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루저"로서 마무리하는 인생이지만, 오히려 "루저"였기 때문에 그 행적과 구도의 과정에서 내가 감동을 받은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게 그의 분석의 요지였다.

더불어 "루저"는 "루저"를 싫어한다는 얘기도 했다.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혐오는 어쩌면 그러한 모습으로 상징되는 계급을 향한, 그리 추락할지 모른다는 공포일 수도 있겠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건 "루저"의 자리에서 안분지족하고 즐기는 모습이 아니라, 미운 오리에서 변신하는 백조의 모습일런지도.
그리고 그보다 깊은 심리의 기저에는 나 자신 스스로를,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하나의 "루저"로, "루저"의 그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6.

요약하면 나는 "루저"의 상태에서 어떤 계기와 매개를 통해 "재능"을 발견하고 이러저러한 노력 끝에 무언가를 "실현"하는 데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고, 그러한 마음 깊은 한 구석에는 나 스스로를 "루저"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화원"에 푹 빠져 지내는 요즘.
과연 나에게 "재능"은 있는지, 왜 어떤 종류의 "재능"에 대해서만 편애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시간을 두고 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p.s

"바람의 화원" 4회 그네 장면은 너무나도 노골적인 성적 메타포로 가득차 있어서 깜딱 놀랐다는..
"처음이 중요하지요, 언제나."와 같은 정향의 대사나, 그네를 가속하기 위한 몸동작과 얼굴 표정의 교차 편집에서 연상되는 성행위, 마지막 윤복의 절정 고백까지.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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