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분류 전체보기 (4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ARCHIVE

LINK



  1. 2008.02.16
    숭례문, 조선, 유교 그리고 어른 2
  2. 2007.08.26
    '네티즌'이란 표현.. 이제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




0.

영화 "분노의 역류"에서 진범은 소방 예산이 줄어드는 데 대한 불만을 가진 동료 소방대원이었더랬다.
숭례문 화재 속보를 보다가 잠깐 그런 상상도 해봤다. 부실한 문화재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누군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건 아닐까.

웬걸.. 범인으로 잡힌 70대 노인은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 때문에 그랬다 하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미안하다는, 숭례문은 다시 복원하면 된다는 말을 했다.
아..


1.

숭례문이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상실감과 동시에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던 건, 정작 나 자신이 숭례문에 대해 가진 지식이 전무하다는 사실이었다.
국보1호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 건축물이 국보로 지정될 만한 어떤 의의와 가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외국인에게 숭례문에 대해 관광 가이드를 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내가 가진 지식은 이씨조선왕조의 도읍을 둘러싼 성의 남쪽 문이라는 사실 외에 더 할 얘기가 없는 수준인 것이었다.

불타버린 잔해를 바라보며 드는 안타깝고 처참한 마음과 모순되지만, 사실 화재가 나기 전 그 주위를 숱하게 돌아다닐 때에도 정작 그곳에 있는 것이 문화유산이라는 의식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에둘러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솔직해지자. 별 애착을 느끼지 못했던 게 맞다.


2.

왜 그런가.. 돌아보면 나 스스로는 유교에 대한 개인적 반감과 숭례문이 그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선택한 조선왕조 시기의 상징적 건축물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진단한다.

공자의 유교가 주자에 이르러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조선 땅에서 이룬 학문적 성과, 주리론이니 주기론이니, 사단칠정 따위를 다 이해하고 하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학문으로서, 철학으로서의 유교는 사실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은 하지만, 실생활에서 철학과 사상이 아닌 격식과 예의 형태로 이런저런 부분을 구속하고 강요하는 모습은 완전 질색인데, 특히 조선시대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유교적 관념에서 파생한 불합리한 관습이 휘두르는 폭력을 볼 때 그러했다.

그게 유교의 본질은 아닐 터이나 가장 질색인 것이 "장유유서"다.
나더러 장유유서라는 단어를 새로이 정의하라면, 나이값 못하는 어른이 출생 시기에 의해 자연적으로 획득된 권위를 휘두르며 똥고집을 피우거나 합리적인 의견을 짓밟으며 사욕을 도모하는 것. 이라 하겠다.

나이들어 힘없고 외로운 노인들을 배려하고 돌보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이지 어른이기 때문이 아닌 것이며,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극빈층과 소년소녀가장인 아이들, 장애인을 배려하고 보호해야 하는 이유와 동일한 것이지 단지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장유유서"를 합리화 하는 근거가 어른들의 연륜에서 체득하고 축적된 "지혜"라면, 그런 "지혜"가 없이 그저 나이만 먹은 이들은 어떡할 것인가.

조선왕조는 바로 그 유교라는 사상적 배경이 통치이념자 생활규범이 되었던 시대였지만 과연 지금은 어떤한가.


3.

이념에 따라 붕당으로 나뉘고 관념과 허상에 빠져 격식만 강조하던 보습을 보며 왜 우리 선조들은 좀 더 실질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강산이 수십번 바뀌어 2008년 현재는 철학과 사유는 간데 없고 온통 "실용" 천지다.

불을 지른 이유도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 때문이고, 대운하를 파헤치건 말건 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지도 모르니 좌빨은 뽑아서는 안되는 것이며, 영어 몰입 교육을 해야 하는 것도 그래야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그 "실용"이란 것은 아마도 "물욕"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이념인 모양이다.
너무 관념 속에 허우적거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아무런 철학적 소양 없이 실용을 외치다가는 딱 지금의 모습이 되는 것 같다.


4.

돈이 곧 철학인 이들이 어른 행세를 하려고 하니 당최 이 나라에는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

불을 지른 그 70대 노인은 그 모든 걸 한꺼번에 보여줬다.
토지 보상금을 향한 노욕과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로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그 어른의 지혜, 그리고 다시 지으면 된다는 그 척박한 정신세계..


5.

숭례문이 불타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은, 유교며 조선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과 상관없이 단지 오래된 그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아무리 오래되어봤자 100년 채우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희소가치가 없다.
오래되어 사라졌을 때 많은 이들에게 마땅히 가슴 아프고 슬픈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좀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데 그렇다고 부족한 그게 아마도 돈은 아닐 것이다.





And




네티즌.
Network와 Citizen의 합성어. 오프라인에서만 활동하는 사람과 구분하여 '넷(Net)'을 통한 소통이 가능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 정도로 해석하면 큰 무리는 없을 듯 싶다.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일정 부분 '네티즌'이라는 집단 내지 부류의 공통적 정서가 존재했을 수 있겠으나(예컨대, 초기 PC통신 시절), 오늘날 온라인에 접속하여 이런저런 표현이 가능한 사람들의 규모가 과연 '네티즌'이라는 말로 대표하여 나타낼 수 있는 수준인가.. 에 대해서는 긍정하기 어렵다.

'네티즌'은 어쩌구 저쩌구.. 하는 표현에서 '네티즌'을 '국민' 혹은 '시민' 등으로 치환했을 때 그 의미는 물론 달라지지만, '네티즌'이라는 대상 자체가 '국민'이나 '시민' 등으로 지칭하는 것만큼의 광범위하고 모호한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어제오늘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어서 근래의 기사들을 보면 '일부 네티즌'이라는 식으로 한정하여 인용의 출처를 삼고 있으나, 이런 식의 표현조차도 위험한 것은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사실 왜곡과 여론 호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책상에 앉아 인터넷 이곳저곳을 눈팅하며 기사꺼리를 찾는 찌라시 기자들에게는 모든 기사의 출처가 소위 '네티즌 반응'이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 이택순 경찰청장이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 자신의 퇴진을 요구한 경찰 간부에 대해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자 경찰관과 네티즌 등이 일제히 반발, 그 결과가 주목된다. ... >

< MBC '무한도전'에 대한 네티즌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불거져 나왔다. 25일 '무한도전'은 지난주에 이어 '서울구경 선착순 한 명' 2부를... >

< ... '커피프린스1호점'은 27일 내용상으로는 마지막회인 '커피프린스1호점 17회'를 남겨두고 윤은혜가 예쁜 여인의 모습으로 거듭날지 네티즌들의 궁금증이 대단하다. >

< ... 또 최근의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K씨, L씨 등이 공교롭게도 모두 개그맨 출신이라는 점에서 네티즌들은 개그맨들이 왜 성폭행에 잇따라 연루되는지 궁금해 하면서 이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 >

여기서 '네티즌'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지 감이 오는가.
Network에 접속 가능한 이들 중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상상이 되는가.

아래의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네티즌'이라는 단어가 어떤식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 ... ‘디워’를 TV 생방송 토론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던 386세대 평론가 진중권을 향해 ‘안티 진중권’ 운동을 주도하는 네티즌들은 대부분 포스트 386이다. ... >

기사 전문을 읽어봐도 무슨 근거로 저런 결론이 가능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얼마전 있었던 '진중권 vs 누리꾼 맞장토론' 역시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추출된 몇몇 패널을 마치 전체 넷(Net) 사용자를 대변하는 양 토론의 제호를 달았다. 심지어 그렇게 모인 패널 사이에서도 아젠다에 대한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사족. 개인적으로, '누리꾼'이라는 표현은 지나가는 개나 줘버렸으면 좋겠다.)

요컨대, 그 모집단인 이른바 '네티즌'이 더 이상 단일화할 수 없는, 다양한 군상이 모인 규모가 되었으므로, 그중 어느 한쪽의 말을 인용하며 '네티즌' 운운하는 것은 이제 옳지 않다는 뜻이다.

이제는 기사에서 '네티즌'이라는 불분명한 표현 대신, 어떤 출처와 근거에 의한 것인지를 보다 상세하고 명확하게 기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세줄요약
1. 네티즌은 무지 많고, 많아진만큼 다원화되었고 획일적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2. 아무데나 네티즌을 갖다 붙이면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3. 그러니 이제는 다른 더 정확한 표현을 찾자.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