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분류 전체보기 (4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ARCHIVE

LINK



  1. 2009.11.08
    struggling 4
  2. 2007.10.08
    경험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




0.

도대체가 몇개월만의 글인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바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몇자 끄적거릴 짬도 없을만치 바빴단 건 거짓말일테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게 더 그럴듯한 핑계일지도.

하고 싶은 얘기가 목구멍에 치밀어 오르기 전까지는 글 쓰지 말라고..
누가 그랬단 얘길 어디서 들어본거 같기도 한데,
치밀어 오르느니 오로지 욕지거리요,
그 욕을 부러 꾹꾹 눌러담은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는 미명하에,
시시때때로 배욕의 쾌를 벗삼아온 터라
굳이 뭔가를 써볼 의욕이 생기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1.

자라면서 늘 내 인생의 스승을 찾았더랬다.
큰바위얼굴.. 같은.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 선생들에 대해 유난스레 실망이 많았던 것도
학교 선배들과의 세미나가 단 한번도 흡족하지 못했던 것도
내 결혼 때 주례를 맡기고 싶단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교수가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도
군대에서 마주쳤던 여러 장교들이 한결같이 어처구니 없었던 것도
어쩌면 내 기대치가 마치 성인군자를 기다리는 수준이었던 탓일까나.

회사에 들어온지 어언 9년.
드디어 내 인생의 완벽한 반(反, anti)스승을 만났다.
이 이상 더한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완벽한 반면교사로서의 롤모델.
나중에 나이가 들어 기억이 가물가물해져도
2009년은, 아.. 그 사람 때문에 참 힘들어했던 시절이었지.. 로 기억될게다.

완벽한 무능.
그 어떤 종류의 리더십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게 0에 수렴하는 카리스마.
무식과 귀닫음, 똥고집의 시너지.
완전무결한 내 인생의 걸림돌.



2.

내 기억이 점점 의심스러워지는 요즘.

출퇴근 중에 PMP 에 이런저런 미드나 일드, 애니 등을 담아서 짬짬히 보곤 하는데,
요 얼마전에 "나디아"를 달렸더랬다.
내 고딩 때였는지, 대딩 때였는지 TV에서 해주던 당시에
중간 몇몇 회분에서 그림이 굉장히 구렸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 다시 본 총 39회분은 모두 멀쩡했다는..
그게 지금도 기억이 나는 이유는
그 당시에도 보면서, 아니 그림이 왜 이렇게 후져졌지? 어디 다른데다 외주를 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한 탓이다.
설마 방송국에서 짝퉁을 만들어 방영했을 리도 없고..
하여간 미스테리다.



3.

내 국딩 5년 땐가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이 베스트셀러였었더랬다.
중딩 때쯤 아버지더러 퇴근길에 좀 사다 주십사 했더니만
어버진 매양 그게 다 그건줄 알고 그만 짝퉁을 사오셨던 것이었다.
소설 손자병법, 장도명 著, 도서출판 은광사.

비록 짭이지만 재미있었다.
훗날 기어이 찾아 읽어본 정비석 버전과 비교하더라도
정비석 특유의 상투적인 인물묘사에 비추어
오히려 한결 생생하고 치밀하다는 게 내 소감이었다.

그렇게 주욱 잊고 살다가
회사 도서관에서 가이온지 초고로.. 라는 일본인이 쓴 소설 "손자"를 보게 되었다.
아니 근데 시밤 이게 내가 어려서 읽었던 그 장도명 버전의 소설 손자병법과 내용이 완전히 똑같은 것이었다.
역사소설이니 사건이야 뭐 다를 수 없겠지만,
공처가이면서 전쟁사 덕후로 묘사되는 손무의 캐릭터나
입신양명하여 가문을 일으켜야 하는 부담, 손빈에 대한 질투와 컴플렉스로 만들어진 방연의 모습은
설마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같을 순 없는 것이었다.

내가 읽은 게 87년 판본이고
가이온지 초고로란 사람이 쓴 책의 발행일을 조회해보니 98년으로 나오길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좀 어리둥절 했었는데,
찾아보니 그 일본인 저자의 생몰이 1901~1977 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98년은 한국어판 초판 발행일인 듯.
결국은 내가 어려서 읽은 그 내용이 베껴 쓴 거 맞는 모양이다.



4.

연말께까진 계속 이렇게 바쁠테지만
그래도 다다음주 쯤 되면 적어도 지금보단 좀 나아지겠지..

힘들지만 암중모색의 시기로 여기기.


















And




지금은 상무가 된, 몇달전까지 내가 속한 부서의 부서장이었던 모 부장은 업무 외적인 면에서의 상식 수준이라든가 평소의 술버릇, 인간성 등에서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업무추진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카리스마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리소스를 남김없이 모조리 사용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스타크래프트에 비유하자면 SCV를 가지고 자원도 채취하고 정탐도 보내고 급할 땐 전투까지 시키는 유형으로, 그 자신이 콘트롤할 수 있는 유닛들 중 단 한마리라도 말년 병장처럼 짱박혀 빈둥거리고 있는 꼴을 용인하지 못할 뿐더러, 에너지가 한칸 남아 힐링 내지 리페어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야 이 녀석이 일 좀 했구나.. 하고 인정하는 상사였다.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사원 시절부터 자기는 그런식으로 일을 했고 상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며, 당시 자신의 부서장이었던, 지금은 다른 사업부의 사업부장으로 전배인사된, 모 전무가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롤 모델이었음을 공공연히 강조하곤 했는데, 그 사람 역시 아랫사람들을 닥달하고 부리는데 가차없기로 유명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생산한 어떤 제품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결함으로 인해 시장에 나가 문제가 생겼다면, 관련 부서가 모여 이에 대한 개선책을 찾고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방식일 터이나, 그의 스타일은 작은 일이라도 먼저 임원선까지 과장섞인 보고를 해서 이슈의 심각성을 부풀리고, 귀책부서의 실수를 부각시키고, 마땅히 그 경우에 대응해야 할 부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먼저 솔루션을 내놓는 식이었다.

이에 대해 그의 조직에 소속된 부하직원이 갖는 불만은, 우선 사안의 심각성을 부풀리는 바람에 평온한 날 없이 일년내내 비상상황이라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다른 부서에서도 기회만 되면 우리 부서의 실수를 찾으려 들더라는 점, 부서간에 협력이 점점 어려워지고 다들 무사안일, 복지부동을 추구하게 되며, 다른 부서에서 할 일까지 감당하려다 보니 여유있게 생각해볼 일을 잔업과 야근으로 피곤에 쩔어 하게 된다는데 있었다. 요약하자면 그의 스타일 내지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부서와 비교해서 업무가 너무 과중해진다는 것이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하나는 그런식의 일하는 방식이 회사와 조직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식의 업무스타일을 계속 고수했고 회사는 그를 조직장악력과 업무추진력을 겸비하고 회사에 헌신하는 재원으로 평가했으며,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런 식의 성공사례가 늘어갈수록 자기방식에 대한 확신이 더 견고해지겠구나.. 하며 답답해하곤 했다. 분위기 좋을 땐 이런저런 불만들을 빙빙 돌려서 농담을 가장하여 찔러보기도 하고, 술이 떡이 돼서 다들 제정신이 아닐 때 미친척하고 직설적으로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신념은 확고했다. 아니, 확고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그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부하직원들이 먼저 불만과 고충을 하소연할때의 대답은 그렇다 쳐도,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그 자신이 먼저 답답해하며 사뭇 진지하게 부하직원들에게 문제와 방법을 물을 때에도, 그는 진정으로 그 자신의 스타일 외에 다른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업무처리 방식으로 윗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마다 그 방식에 대한 확신을 더했던게 아니라, 보고 배운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고, 다른 새로운 방법을 시험해보기엔 그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방식이 있더라도 결국 가장 믿을 수있는, 가장 리스크가 적은 방식을 선택했을 뿐일지도..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결국은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험으로 얻은 어떤 가치판단의 기준이, 경험 외적인 것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유연한 사고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건 딱 거기까지만의 발전을 허용하는 독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삼라만상을 모두 경험할 수도 없는 일이고, 살면서 직접 체험하여 익힐 수 있는게 얼마나 되겠으랴만은 어린 시절의 체험으로 사고방식이 굳어버리는 경우는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직접적인 체험에 의해 축적된 데이타로부터 주변 인물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행동양식 중에 "선입견"이 있다. 말끔한 외모에 정장 차림이면 큰 고생없이 자라 펜대 굴리는 일을 하고 있을꺼라 생각한다거나, 소매자락 사이로 팔뚝에 슬쩍 문신이라도 보이면 소싯적에 좀 놀았거나 건달 생활을 하나보다.. 하는 그런 생각들. 선입견이 유용한 것은 찰나의 시간에 빠른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음으로써 불확실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선입견의 효용은 딱 거기까지이다. 그 이후에 추가되는 직간접적 데이터에 의해 처음 내려졌던 평가는 수정될 수도 있다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경험에 발목을 붙잡힌 채 선입견과 편견으로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려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나이드신 분들이 6.25라는 비극과 전후의 반공이데올로기를 체험하여 빨갱이에 대해 갖는 레드 컴플렉스와 그들의 트라우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시대와 사상의 변화를 수용하고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명박이 대운하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그가 직접 체험한 불도저와 콘크리트의 경제가, 그보단 덜 직접적으로 경험했을 환경 문제와 고도성장기 이후의 변화된 경제 흐름에 우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동영이 그 어떤 철학 내지 정견 없이 조직관리와 자기편만들기에만 전념해온 것도 지난 대선에서 노사모라는 조직으로부터 시작된 센세이션을 직접 체험했던 바가 컸을 터이고, 그 이상을 내다보지 못하고 계속 거기 천착하는 이상 아무런 가능성도 발견할 수 없는 정치꾼일 뿐이라 생각한다.
심형래가 그렇게 CG를 강조했던 건 아마 남기남 감독으로부터 전수받은 영화철학에 쥬라기공원이 보여준 CG에 경악했던 기억이 버무려진 탓이 아닐까. 그가 그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어 기본적인 영화 문법을 익히고 단지 돈벌이로서의 영화가 아닌 무언가 표현하기 위한 예술로서의 창작물을 만들길 바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이 글엔 내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들이 어떻게, 얼마나 작용하고 있을까.
혹 나 자신이 어떤 결론을 미리 내리고 온갖 궤변을 동원해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항시 주의할 일이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