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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8
    학력위조, 앞으로는 없어질까? 2




신정아씨로 시작된 학력위조 불길이 쉬이 꺼지지 않고 계속 번져 나가는 기세다.
아무 생각없이 저런 한심한 것들.. 하면서 다시 나를 돌아보니 그리 쉽게 내뱉을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뭐 어디가서 학력을 속이고 다녔단 건 아닌데..


1. 나는 학벌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가

나는 대졸이다.
서울에 본교가 있지만 특이하게도 이과대, 공대, 의대, 체대 등이 수원에 내려가 있는 학교를 졸업했다.
캠퍼스의 이원화 구조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소위 '분교'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이 곳 졸업생들 중 재학시절 누군가에게 분교가 아니라 복수 캠퍼스라는 개념을 항변했던 기억 한번쯤 없는 이는 아마 없을꺼라 생각한다.

사실 분교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행정적으로도 지방 캠퍼스를 두고 있는 타교의 본교/분교 구분이 모교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는 어떤 법적인 정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울과 달리 수원 학생들의 학생증은 총장이 아닌 학생처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고, 굳이 차별화하자면 입학식은 서울 학생들까지 수원에 내려와서 한다는 거나, 동명의 학과가 중복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도였는데 그 비슷한 경우가 타교에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해서 목에 핏대 세워가며 설명하는 내 스스로도 왠지 비굴하단 느낌이 없지 않았다.

사실 '분교'가 아님을 외쳤던 그 억울함과 절박함의 정도는 내가 '분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멸시와 우월감에 비례했으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제부턴가 그런 것에 별 신경쓰지 않고 그냥 '분교 맞아요' 하며 웃을 수 있었지만..
나 말고도 주변에는 여전히 그런 종류의 편견과 집단적 자의식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 우리과는 취직이 최우선이고 취직이 안되면 최후의 선택으로 대학원을 가는 이들이 꽤 있었다. 물론 정말 학문을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준비한 이들도 있지만 그런 이들은 대개 서울대나 KAIST 등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거나 진작부터 관심있는 랩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취직이 안돼서 그대로 대학원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었던 건 사실상 정원미달이었다는 뜻이다. TO는 지방대에서 우리 학교로 진학해 오는 학생들로 채워졌다.

학교 수준 떨어진다며 지방대 출신을 무시하는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대개 취직을 못해 진학한 원생이었다.


2. 학벌은 실력을 대변하는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는 고졸부터 학사, 석사에 해외 박사 학위를 가진이까지 다양한 학력의 사람들이 섞여있다.
이 중에는 석사 학위를 가지고서도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도저히 솔루션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당최 대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맞춤법을 구사하는 사람도 있고, (개정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읍니다'란 말인가. 책을 읽기는 하는걸까) 반면 고졸임에도 무척이나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배웠던 것 중에 지금 회사에서 필요한 지식이란 게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졸업장 때문에 입사하면서부터의 출발선이 달라서 그렇지, 만약 최종학력과 무관하게 동일 선상에서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지금 조직내 상하관계가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퇴사하고 없는, 무능하기로 소문났던 그 책임연구원은 재직 당시에도 술자리에서 자기가 석사출신임을 어찌나 강조했었는지..
 

3. 학력은 학력(學歷)인가, 학력(學力)인가

위조를 해서라도 갖춰야 했을 정도로 거짓 학위가 필요했던 이들에게 학력은 무엇일까.
단지 시작할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거짓학력으로 만들어 낼 권위가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둘 다?


4. 왜..

인구 대부분이 농업 본위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 실용에 필요한 지식은 집안 내에서 전수가 가능했고, 배움은 그야말로 순수한 학문으로 간주되었으며, 먹고 살기에 충분한 노동력과 생산성이 확보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 세대에서 배우지 못한 한(恨)이 많은 것은 신식 학문이 예전의 한학(漢學)처럼 뜬구름 잡는 철학적 교육이 아닌, 보다 실용과 실질을 위한 학문이었으며, 그로 인해 배운자들과의 경쟁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경험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식 세대에 대해 교육열이 높았던 건 다른 민족보다 자식 사랑이 유별나서 그런게 아니고 배움은 곧 힘이라는 등식이 학습되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정상적인 근대의 시기를 거쳐 오지도 못했고 그래서 근대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다.
유교적 관습을 제대로 떨쳐내지도 못한 채 아직까지 사회규범으로 남아 장유유서를 요구하고,
제도화된 배움의 기회를 가졌었단 이유만으로 누구는 교수님, 판사님, 의사선생님으로 불리우며 공동체 내에서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지니고, 어떤이들은 경비아저씨, 기사아저씨, 파출부아줌마로 불리며 자연스레 낮은 자리를 강요받는다.

이는 단지 과거와 지금까지만의 일일까.


5. It's the education, stupid...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고 또 점점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사교육과 조기 교육 열풍이 과열되는 건 그 자체로도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배움의 기회조차 세습된다는 관점에서 이 사회의 기본 토대를 흔드는 위협요소임에 틀림없다.
지금처럼 학력이 학력(學力)으로 권위를 갖고 그 권위가 권력이 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교육의 기회가 세습된 다는 것은 곧 신분과 계급이 세습됨을 의미한다.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잡은 상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법적 장치를 만든다 해도 학력위조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여입학제라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 시기는 이 사회가 자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학벌에 기댄 권위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는 곳이 되고 난 이후여야 할 것이다.



세줄요약
1. 우리 사회는 학벌이 곧 권위가 된다.
2. 그런 상식이 먼저 바뀌어야 학력 위조가 사라질 것이다.
3. 앞으로가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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