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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06
    영어 발음보다 더 중요한 것
  2. 2007.08.18
    학력위조, 앞으로는 없어질까? 2




0.

국딩 시절이었을까.. 어렸을 때, 그러니까 외제면 무조건 조선 것보다 좋다는 생각이 아직 유효하던 시절에 미국이란 나라의 존재는 나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서 차라리 다른 차원 속에 존재하는 세상같은 느낌이었다. 그 시절 "외제"라는 말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할 때에도 "미제"라는 표현은 그 좋고 훌륭한 정도를 깔끔하게 완결하는 어감을 내포하고 있었고, 주위 친구들 중에, 아버지나 삼촌이 미국에서 사다 주신.. 정도의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엔, 그 물질의 귀함은 둘째치더라도, 그토록 초현실적이었던 나라 미국을 왕래하는 직계가족이나 친인척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로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포쓰를 가질 수 있었던..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미국과 북한이 축구를 하면 어느 쪽을 응원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미국을 응원하겠다고 답하던, 북한을 응원하겠다는 쪽은 한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던.. 그런 시절이었다.


1.

자라면서 미제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그나마 점점 그 미제라는 것도 까보면 메이드 인 차이나.. 로 바뀌어갔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알면 알수록 결코 무관할 수 없는 미국이란 나라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그리고 미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美制라는 뜻보다는 美帝를 먼저 연상하게 되면서.. 어렸을 때 느꼈던 초현실적인 국가 미국은 이제는 더 이상 신비하지도, 무턱대고 동경할 이유도 없는 그런 나라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지구촌 최강의 나라로 군림하고 있는 그 나라의 비결이 무엇인지 실제 모습은 어떠할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더랬다.


2.

어찌어찌하여 회사일로 캘리포니아 산호세 쪽 볼 일이 생겨 지난 한 주 동안 출장을 다녀오게 됐다. 미국은 초행길이었다.

미국에서 몇년 살다 온 것도 아니고, 미합중국의 여러 주를 방방곡곡 누비고 돌아온 것도 아니고,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 근처 언저리를 고작 일주일 다녀오고 나서, 그것도 그 안에서 대단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먹고 자고 회사일보고 관광하다 온 걸 가지고, 미쿡에서는 말이지.. 하며 떠들어 대는 건 가소로운 짓이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서 느낀 감상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제한적이며 편협한 사견일 수 밖에 없지만서도, 그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의 영어 광풍에 대해 한 마디 거들어보려 한다.


3.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나는 내가 미국의 껍데기만 맛보고 왔다는 정도는 알지만, 정작 저치들은 미국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 내에서도 특히 비백인의 비율이 높은 도시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내가 체류하는 동안 마주치고 어떤식으로든 소통해야 했던 이들 역시 백인이 아닌 이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중국계, 일본계, 인도계, 멕시코 언저리 계, 아랍계...
그들은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렌트카 사무실에서, 햄버거집 점원으로, 호텔리어로, 주유소에서, 편의점에서, 업무차 방문하게 된 회사의 엔지니어로, 매니저로.. 미국이라는 나라 곳곳에 자신의 일을 갖고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고유한 액센트와 발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 비록 영어가 짧다 하나 적어도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는 자체를 구별 못할 바 아니다.

TOEIC 700점을 간신히 넘기는 저질 영어를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그 서로 다른 발음과 강세를 갖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오히려 서로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영어에 서툰 이국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로가 보다 간단하고 분명한 표현을 사용했고, 내 발음이 엉성하다 하여 그들이 나에게 총질을 하거나 쌍욕을 퍼부어 대는 일은 있을 리 만무했다.

수많은 오렌지 발음 중에 이경숙 위원장이 믿는 올바른 발음은 WASP의 그것인 모양이고, 그것은 정말 그 발음이 맞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WASP으로 연상하는 미국이 곧 정의이며 지고의 선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치들이 생각하는 미국은 여전히 내 국딩 시절에 생각하던 그 미국에 머물러 있을 꺼라는데 한 만원 쯤 걸 의향이 있다.

미네랄, 오렌지건 오뤤지건 아륀지건 다 알아듣고 소통이 되고 이해를 하는게 그 나라인 것을.
중요한 건 발음이 아니었다.


4.

다른 많은 이들이 미국 땅에서 느낀 걸 얘기할 때 "여유"라는 표현을 쓴다.
처음에는 그게 땅덩어리가 넓어서라고 생각했다. 우리처럼 작은 나라 안에서, 다시 수도권에 빡빡하게 모여 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좁기 때문에, 그렇게 부대끼면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그들에겐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오사카 일대를 여행 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건 땅덩어리의 크고 작음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시 전반에 걸친 여유로움과 뭔가 안정된 그 느낌은 그 사회 구성원들간에 무언가 견고한 믿음이 있지 않고서는 가능할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곳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무언의 Rule을 의식한다.
그 합의란 건 더 오래 체류하며 더 많은 경험을 통해 탐지해봐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겠지만, 일상 생활 곳곳에서 그런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교차로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정말로 차를 세우고 다른이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며, 교통신호나 법규를 정확히 잘 지키는 것이 그네들이 유난히 준법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총을 가지고 있을까봐 두려워서?

그들이 공유하는 최소한의 약속, 그것만 지키면 내가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며 너도 나를 해하지 않을 것을 믿는다는.. 아니, 그 암묵적 합의와 약속에 의해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믿음.. 그 합의가 완전하지 못할 지라도 적어도 공동체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막아줄 수 있다는 신뢰.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동일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자유로운 사고와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함이 마땅한 것처럼, 동시에 그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타인의 생각을 억누르지 않을 최소한의 약속.
굳이 하나의 어휘를 고르자면 "상식" 정도가 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엔 그런 종류의 합의가 있는가. 아니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 적이 있는가.

그네들이라고 왜 사회악이 없을 것이며 부정과 부패, 비리와 비양심, 비상식이 어찌 없으랴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대하는 듯한 어조로 이런 글을 끄적이는 건.. 최근 우리는 경제만 살릴 수 있으면, 내 아파트 가격을 올려줄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무시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범국민적 합의를 확인한 바 있기 때문이다.


5.

영어교육은 분명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고, 또 그리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자면서 오렌지가 아니고 오뤤지가 맞다는 둥의 얘기는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큰 방향을 결정할 자리에서 고민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사교육 시장이 왜 형성되었으며, 공교육이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왜 "교육"과 "경쟁"이 등가의 단어가 되었는지, 그 모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수위는 숙고해 보았을까.
사교육비 지출이 커지는데 대한 문제를 학교에서 영어 발음 좋은 사람들을 교사로 채용하면 해결된다는 생각.
진정 고민해서 내 놓은 답이 저것이라면 역대 최강의 똘추들인 것이고, 뭐가 문제인지 다 알지만 자기네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면, 정녕 그들이 위하는 계층이 적어도 기러기 아빠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라면, 그 계층에 속하지 못하거나 당분간 진입할 가능성이 없는 이들은 이 쯤에서 희망을 접고 각자 살길 찾아 나서야 함이 마땅한 일이다.

뭐 진실이 어느 쪽이건 천박하기 짝이 없는 건 매한가지다.


6.

인수위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보여줬다.
굳이 내가 언급하지 않아도 근 한달 새에 보여준 수많은 뻘짓들은 여러 블로거들에 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지적되어왔다.
나는 그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뜨리는 이슈들을 보며 무섭고 답답하고 때론 화딱지가 치밀고 짜증이 지대로인데, 지지율이 10%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은 모양이다.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 정말 상식이 되기에는 아직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이명박이 잘 살게 해 줄꺼라 믿는 이들이여.
레드 썬-




And




신정아씨로 시작된 학력위조 불길이 쉬이 꺼지지 않고 계속 번져 나가는 기세다.
아무 생각없이 저런 한심한 것들.. 하면서 다시 나를 돌아보니 그리 쉽게 내뱉을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뭐 어디가서 학력을 속이고 다녔단 건 아닌데..


1. 나는 학벌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가

나는 대졸이다.
서울에 본교가 있지만 특이하게도 이과대, 공대, 의대, 체대 등이 수원에 내려가 있는 학교를 졸업했다.
캠퍼스의 이원화 구조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소위 '분교'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이 곳 졸업생들 중 재학시절 누군가에게 분교가 아니라 복수 캠퍼스라는 개념을 항변했던 기억 한번쯤 없는 이는 아마 없을꺼라 생각한다.

사실 분교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행정적으로도 지방 캠퍼스를 두고 있는 타교의 본교/분교 구분이 모교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는 어떤 법적인 정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울과 달리 수원 학생들의 학생증은 총장이 아닌 학생처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고, 굳이 차별화하자면 입학식은 서울 학생들까지 수원에 내려와서 한다는 거나, 동명의 학과가 중복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도였는데 그 비슷한 경우가 타교에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해서 목에 핏대 세워가며 설명하는 내 스스로도 왠지 비굴하단 느낌이 없지 않았다.

사실 '분교'가 아님을 외쳤던 그 억울함과 절박함의 정도는 내가 '분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멸시와 우월감에 비례했으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제부턴가 그런 것에 별 신경쓰지 않고 그냥 '분교 맞아요' 하며 웃을 수 있었지만..
나 말고도 주변에는 여전히 그런 종류의 편견과 집단적 자의식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 우리과는 취직이 최우선이고 취직이 안되면 최후의 선택으로 대학원을 가는 이들이 꽤 있었다. 물론 정말 학문을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준비한 이들도 있지만 그런 이들은 대개 서울대나 KAIST 등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거나 진작부터 관심있는 랩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취직이 안돼서 그대로 대학원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었던 건 사실상 정원미달이었다는 뜻이다. TO는 지방대에서 우리 학교로 진학해 오는 학생들로 채워졌다.

학교 수준 떨어진다며 지방대 출신을 무시하는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대개 취직을 못해 진학한 원생이었다.


2. 학벌은 실력을 대변하는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는 고졸부터 학사, 석사에 해외 박사 학위를 가진이까지 다양한 학력의 사람들이 섞여있다.
이 중에는 석사 학위를 가지고서도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도저히 솔루션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당최 대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맞춤법을 구사하는 사람도 있고, (개정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읍니다'란 말인가. 책을 읽기는 하는걸까) 반면 고졸임에도 무척이나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배웠던 것 중에 지금 회사에서 필요한 지식이란 게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졸업장 때문에 입사하면서부터의 출발선이 달라서 그렇지, 만약 최종학력과 무관하게 동일 선상에서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지금 조직내 상하관계가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퇴사하고 없는, 무능하기로 소문났던 그 책임연구원은 재직 당시에도 술자리에서 자기가 석사출신임을 어찌나 강조했었는지..
 

3. 학력은 학력(學歷)인가, 학력(學力)인가

위조를 해서라도 갖춰야 했을 정도로 거짓 학위가 필요했던 이들에게 학력은 무엇일까.
단지 시작할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거짓학력으로 만들어 낼 권위가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둘 다?


4. 왜..

인구 대부분이 농업 본위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 실용에 필요한 지식은 집안 내에서 전수가 가능했고, 배움은 그야말로 순수한 학문으로 간주되었으며, 먹고 살기에 충분한 노동력과 생산성이 확보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 세대에서 배우지 못한 한(恨)이 많은 것은 신식 학문이 예전의 한학(漢學)처럼 뜬구름 잡는 철학적 교육이 아닌, 보다 실용과 실질을 위한 학문이었으며, 그로 인해 배운자들과의 경쟁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경험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식 세대에 대해 교육열이 높았던 건 다른 민족보다 자식 사랑이 유별나서 그런게 아니고 배움은 곧 힘이라는 등식이 학습되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정상적인 근대의 시기를 거쳐 오지도 못했고 그래서 근대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다.
유교적 관습을 제대로 떨쳐내지도 못한 채 아직까지 사회규범으로 남아 장유유서를 요구하고,
제도화된 배움의 기회를 가졌었단 이유만으로 누구는 교수님, 판사님, 의사선생님으로 불리우며 공동체 내에서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지니고, 어떤이들은 경비아저씨, 기사아저씨, 파출부아줌마로 불리며 자연스레 낮은 자리를 강요받는다.

이는 단지 과거와 지금까지만의 일일까.


5. It's the education, stupid...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고 또 점점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사교육과 조기 교육 열풍이 과열되는 건 그 자체로도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배움의 기회조차 세습된다는 관점에서 이 사회의 기본 토대를 흔드는 위협요소임에 틀림없다.
지금처럼 학력이 학력(學力)으로 권위를 갖고 그 권위가 권력이 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교육의 기회가 세습된 다는 것은 곧 신분과 계급이 세습됨을 의미한다.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잡은 상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법적 장치를 만든다 해도 학력위조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여입학제라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 시기는 이 사회가 자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학벌에 기댄 권위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는 곳이 되고 난 이후여야 할 것이다.



세줄요약
1. 우리 사회는 학벌이 곧 권위가 된다.
2. 그런 상식이 먼저 바뀌어야 학력 위조가 사라질 것이다.
3. 앞으로가 큰일이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