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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재발견 : 한국 자본주의와 기업이 빠진 조직의 덫 / 우석훈 지음. -- 서울 : 개마고원, 2008



읽고 난 감상은..
늘 뭔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모순들이 제법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
다 공감하진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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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는 회사의 지금 부서에는 상조회라는 비공식 조직이 있고, 부서원들로부터 매월 직급별로 1~3만원 가량을 추렴하여 각종 경조사 및 회식 지원에 지출한다. 관례적으로 임기는 1년이고 매년 망년회 자리에서 특별한 선출/임명 절차 없이 얼렁뚱땅 등떠밀리는 식이나 거수 등 그때그때 편한 방식으로 정하게 된다.

회사는 내가 사원이던 무렵의 언젠가부터 GWP(Great Work Place) 라는 것을 도입하여 매해 10월 쯤 정기적으로 부서별 index를 조사하고 있다. 직역하자면 일하기 좋은 직장 정도가 되는데 통상 높고 꾸준한 업무 강도를 요구하는 부서일수록 그 점수가 현저히 낮게 마련이다. 그 조사 결과가 어떤 식으로 이용되는지는 알지 못하나, 제도 도입 이후 각 부서에는 GWP 활동을 위한 전담 보직이 만들어졌고, 대개 그해 상조 조직의 회장이 GWP 담당을 겸직하게 된다.

말이 전담이지 실제로는 원래 하던 업무를 고대로 다 하면서 거기에 더해 회식 장소 챙기고, 조직력 강화 행사 기획하고, 부서원들의 불만 요소를 찾아 제거하여 궁극적으로는 GWP index를 향상시켜야 하는 게 그 사람에게 더해지는 업무목표이다.

사내에서 아니 적어도 부서내에서조차 그 어떤 행정적/인사적 권한 없이 그저 각종 행사의 실무 진행만으로 뭔지 모를 그 스트레스와 불만을 제거하고 GWP index의 향상을 꾀하라는 지시 혹은 발상 자체도 우습거니와 이게 담당자를 하나 둠으로써 해결될 성질의 것인가에 고민이 미치면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우리부서의 상조회장 겸 GWP 담당은 나다.  ㅜ.ㅡ

지금은 상무가 된 그 상무가 지금 부서의 부서장이던 시절, 이게 혹시 다면평가 관점에서 과락 사유가 될지도 모르니 아예 좋은 점수를 줘서 임원진급을 시켜 보내버리자는 모종의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그 해를 제외하고, 우리 부서는 늘 팀 내 최하위권의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현상은 GWP index 가 낮다는 것.
미션은 그걸 끌어올리자는 거.

GWP 업무를 떠나 내가 볼때 문제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일단 하나는 GWP index 결과 자체가 보여주는 회사/상사를 향한 불만의 내용들이며
그보다 더 심각한 다른 하나는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상사는 뭘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점.

말로는 창의적인 생각을 독려하면서 실제로는 일사분란함과 획일성을 최고로 치고, 매사 소통이 잘되어야 한다고 주절대면서 막상 예스맨이 아니면 곧 네거티브가 되는 이런 조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만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것이길래 GWP 응답 결과는 그렇게 나오는 것일까.

우석훈 박사의 '조직의 재발견' 내에 기술된 내용으로 이 부서를 해석하자면 이런거 아닐까.

회사/상사는 일방적 업무지시와 신속한 이행에 익숙하다.
이에 거부감이나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예스맨류(類)가 있다.
이와 대비대는 네거티브군(群)도 있다.
고과의 배분이 상관관계를 갖는다.
조직 내에 라인이 형성된다.
조직 내에서 공공연하게 정글, 서바이벌 등의 용어를 통해 내부경쟁을 암시한다.
나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야근 등의 의태(疑態)가 생존을 위한 개인전략으로 채택되고,
그 결과 정보/기술 공유에 인색해지고 비밀리에 이직/전사공모 등을 준비한다.
회사/부서의 주요한 결정들은 예스맨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창의니 혁신이니 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

적어도 지금 있는 조직은 그렇게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는 중이다.















And




지금은 상무가 된, 몇달전까지 내가 속한 부서의 부서장이었던 모 부장은 업무 외적인 면에서의 상식 수준이라든가 평소의 술버릇, 인간성 등에서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업무추진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카리스마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리소스를 남김없이 모조리 사용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스타크래프트에 비유하자면 SCV를 가지고 자원도 채취하고 정탐도 보내고 급할 땐 전투까지 시키는 유형으로, 그 자신이 콘트롤할 수 있는 유닛들 중 단 한마리라도 말년 병장처럼 짱박혀 빈둥거리고 있는 꼴을 용인하지 못할 뿐더러, 에너지가 한칸 남아 힐링 내지 리페어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야 이 녀석이 일 좀 했구나.. 하고 인정하는 상사였다.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사원 시절부터 자기는 그런식으로 일을 했고 상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며, 당시 자신의 부서장이었던, 지금은 다른 사업부의 사업부장으로 전배인사된, 모 전무가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롤 모델이었음을 공공연히 강조하곤 했는데, 그 사람 역시 아랫사람들을 닥달하고 부리는데 가차없기로 유명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생산한 어떤 제품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결함으로 인해 시장에 나가 문제가 생겼다면, 관련 부서가 모여 이에 대한 개선책을 찾고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방식일 터이나, 그의 스타일은 작은 일이라도 먼저 임원선까지 과장섞인 보고를 해서 이슈의 심각성을 부풀리고, 귀책부서의 실수를 부각시키고, 마땅히 그 경우에 대응해야 할 부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먼저 솔루션을 내놓는 식이었다.

이에 대해 그의 조직에 소속된 부하직원이 갖는 불만은, 우선 사안의 심각성을 부풀리는 바람에 평온한 날 없이 일년내내 비상상황이라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다른 부서에서도 기회만 되면 우리 부서의 실수를 찾으려 들더라는 점, 부서간에 협력이 점점 어려워지고 다들 무사안일, 복지부동을 추구하게 되며, 다른 부서에서 할 일까지 감당하려다 보니 여유있게 생각해볼 일을 잔업과 야근으로 피곤에 쩔어 하게 된다는데 있었다. 요약하자면 그의 스타일 내지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부서와 비교해서 업무가 너무 과중해진다는 것이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하나는 그런식의 일하는 방식이 회사와 조직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식의 업무스타일을 계속 고수했고 회사는 그를 조직장악력과 업무추진력을 겸비하고 회사에 헌신하는 재원으로 평가했으며,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런 식의 성공사례가 늘어갈수록 자기방식에 대한 확신이 더 견고해지겠구나.. 하며 답답해하곤 했다. 분위기 좋을 땐 이런저런 불만들을 빙빙 돌려서 농담을 가장하여 찔러보기도 하고, 술이 떡이 돼서 다들 제정신이 아닐 때 미친척하고 직설적으로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신념은 확고했다. 아니, 확고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그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부하직원들이 먼저 불만과 고충을 하소연할때의 대답은 그렇다 쳐도,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그 자신이 먼저 답답해하며 사뭇 진지하게 부하직원들에게 문제와 방법을 물을 때에도, 그는 진정으로 그 자신의 스타일 외에 다른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업무처리 방식으로 윗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마다 그 방식에 대한 확신을 더했던게 아니라, 보고 배운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고, 다른 새로운 방법을 시험해보기엔 그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방식이 있더라도 결국 가장 믿을 수있는, 가장 리스크가 적은 방식을 선택했을 뿐일지도..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결국은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험으로 얻은 어떤 가치판단의 기준이, 경험 외적인 것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유연한 사고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건 딱 거기까지만의 발전을 허용하는 독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삼라만상을 모두 경험할 수도 없는 일이고, 살면서 직접 체험하여 익힐 수 있는게 얼마나 되겠으랴만은 어린 시절의 체험으로 사고방식이 굳어버리는 경우는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직접적인 체험에 의해 축적된 데이타로부터 주변 인물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행동양식 중에 "선입견"이 있다. 말끔한 외모에 정장 차림이면 큰 고생없이 자라 펜대 굴리는 일을 하고 있을꺼라 생각한다거나, 소매자락 사이로 팔뚝에 슬쩍 문신이라도 보이면 소싯적에 좀 놀았거나 건달 생활을 하나보다.. 하는 그런 생각들. 선입견이 유용한 것은 찰나의 시간에 빠른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음으로써 불확실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선입견의 효용은 딱 거기까지이다. 그 이후에 추가되는 직간접적 데이터에 의해 처음 내려졌던 평가는 수정될 수도 있다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경험에 발목을 붙잡힌 채 선입견과 편견으로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려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나이드신 분들이 6.25라는 비극과 전후의 반공이데올로기를 체험하여 빨갱이에 대해 갖는 레드 컴플렉스와 그들의 트라우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시대와 사상의 변화를 수용하고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명박이 대운하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그가 직접 체험한 불도저와 콘크리트의 경제가, 그보단 덜 직접적으로 경험했을 환경 문제와 고도성장기 이후의 변화된 경제 흐름에 우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동영이 그 어떤 철학 내지 정견 없이 조직관리와 자기편만들기에만 전념해온 것도 지난 대선에서 노사모라는 조직으로부터 시작된 센세이션을 직접 체험했던 바가 컸을 터이고, 그 이상을 내다보지 못하고 계속 거기 천착하는 이상 아무런 가능성도 발견할 수 없는 정치꾼일 뿐이라 생각한다.
심형래가 그렇게 CG를 강조했던 건 아마 남기남 감독으로부터 전수받은 영화철학에 쥬라기공원이 보여준 CG에 경악했던 기억이 버무려진 탓이 아닐까. 그가 그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어 기본적인 영화 문법을 익히고 단지 돈벌이로서의 영화가 아닌 무언가 표현하기 위한 예술로서의 창작물을 만들길 바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이 글엔 내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들이 어떻게, 얼마나 작용하고 있을까.
혹 나 자신이 어떤 결론을 미리 내리고 온갖 궤변을 동원해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항시 주의할 일이다.





And




내 인생에서 군대의 기억은 어지간해서는 다시 꺼내고 싶지도 않고 어디가서 자랑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종류의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불쑥불쑥 떠오르는 단상이 있는 건 외려 내 의지와 무관하게 깊이 새겨져 있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며 그로인해 내 글은 종종 군시절 에피소드로부터 시작하곤 한다.

자대배치를 받던날, 나와 내 동기가 소속될 소대는 세 내무실에 걸쳐 나누어져 있었고 우리 둘은 각각 그 중 한 곳으로 더플백을 풀게 되어 있었다. 동기녀석이 배치받은 3내무실과 내가 생활하게 될 2내무실의 분위기가 전 중대를 통털어 양 극단에 위치한다는 걸 알게 된건 자대배치를 받고 오래지 않아서였다. 다행히도 내가 있는 곳이 양지였다. 동기놈의 3내무실은 중대 내에서도 내무실 군기가 가장 센 곳으로 통하는 곳이었고, 일체의 웃음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구타와 얼차려가 있었다. 반면 내가 속한 곳은 벽하나를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로 화기애애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작업 중에나 훈련장에서나 식당에서 선임병들 몰래 서로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이등병에게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나는 2내무실에 배치된 것이 마냥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남들 다 겪는 그런 이등병 생활을 크게 다르지 않게 보내고.. 어떤 고참들에게는 갈굼도 받고, 어떤 고참들과는 장난도 치고, 시간이 지나 후임병도 생기고 군생활의 요령도 늘고 짬이 차고 어느덧 분대장이 되었다. 어느 군바리가 그리 느끼지 않겠으랴마는, 짬이 좀 된 뒤에 바라보는 부대 내 군기강은 땅에 떨어지다 못해 아예 지구 반대편으로 뚫고 나가려는 기세였고, 정말 군기가 빠져서 그랬던것일까.. 부대에는 늘 이런저런 사고가 그치질 않았다. 2내무실을 제외한 여섯 내무실 전부가 미귀 내지 탈영 등의 이력을 가진 관심사병을 하나씩 보유하게 되었고, 여전히 분위기 좋은 2내무실은 그런 훈훈함과 무사고 이력을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하고 그게 다시 밝은 분위기로 피드백하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었다.

그 즈음 모두가 예의주시하고 있던 녀석은 변심한 애인 문제로 공중전화를 붙잡고 살기 시작한 3내무실의 한 후임병이었다. 다들 이 녀석이 언제 사고를 터뜨리려나 불안해하고 있을 무렵.. 기어이 휴가를 나갔다가 미귀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헌병들 손에 잡혀들어오고.. 며칠동안인가 군기교육대를 다녀왔다. 그 동안 부대 분위기라고 좋을리 없어 전 중대원이 군장을 꾸려 연병장을 돌며 연대책임의 속죄행위를 하고 영창에서 돌아온 그 녀석이 잔뜩 풀죽은 채 고참들의 갈굼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 어느날, 중대장이 내린 나름 특단의 조치가.. 이 녀석을 2내무실로 옮기라는 명령이었다.

우리 내무반원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적어도 내무실 차원에서는 구타없는 밝은 분위기와 무사고 전통에 빛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에, 사고 이력과 가능성을 지닌 멤버를 받아들이기가 다들 너무 억울했던 것이다. 군기교육대에서 어떤 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은 사고를 저지르기 전에 비해 무척이나 기가 꺾여 있었고 그래서 어쩌면 더 불안해보였고 그런 그를 분대원들은 다정하게 보듬지도 못하고 대놓고 갈구지도 못한 채 냉랭하게 대할 뿐이었다.

나 역시 유쾌할 리 없었다. 전역까지 이제 불과 두달 남짓인데.. 행여 이 놈이 또 무슨 사고를 쳐서 내 뒷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아.. 왜 말년에 이런 시련이 찾아오나..
일석점호를 앞두고 다들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을 무렵, 그 녀석을 데리고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뽑아 막사 뒤 체력단련장으로 갔다. 담배를 한대 물려주고, 나도 하나 피워 물면서.. 하루종일 궁리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내용이.. "내가 이등병일 때 어떤 놈이 축구하다가 장파열로 죽었다."로 시작해서, "어떤 놈은 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었는데 죽지는 않고 어찌어찌됐다, 일병 때 어떤 놈이 소원수리를 써서 다들 개고생을 했는데.. 상병 때 어떤 놈이 사격장에서 자살을 했는데.." 등등 하다가 "이런저런 힘든 순간들을 버텨내고 지금 이 자리까지 잘 생활해 온 나 스스로가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나중에 너도 지금 내 위치에 섰을 때, 내가 느끼는 이 뿌듯함과 설레임을 너도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식이었다.

마지막 대사를 마칠 즈음.. 이 녀석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쓴 나도 놀랄 정도로 효과가 좋았더랬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감정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사고 안치고 잘 하겠다고, 믿어달라는 흐느낌과 자기고백으로 이어지더니, 그후 녀석은 다시 중대의 일원이 되어 정말 내가 전역하는 날까지 2내무실의 무사고 신화를 이어갔다. 전역 후에 만난 다른 후임병 말로도 잘 지내고 있더라 했다.

...
...
복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직장에서 종종 그 때 그 기억을 떠올린다.

아직 뭘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신입사원들을 볼 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일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 잘 가르쳐주지 않는 선배 사원을 보며 원망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볼 때, 밖에 나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귀중한 비법이라도 전수받는 양 귀담아 듣는 모습을 볼 때.. 맞아 나도 저 때는 저랬는데.. 어차피 조직에 적응하고 나면 이 조직의 썩은 곳과 문제점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을.. 그 땐 왜 그렇게 빨리 조직의 일원이 되지 못해 불안해했을까.. 늘 조직의 문제점에 대해 뒷담화를 하면서 왜 난 이 조직을 여태 떠나지 못하고 있을까..

그 때 그 녀석에겐 군대라는 조직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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