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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척 회상 (4/4)


0.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공교롭게 놀란의 배트맨 연작을 모두 극장에서 보게 되는 걸 보면 사실은 좋아하는건지도 모르겠다.

개봉에 즈음하여 여기저기서 스포일러성 글들이 스멀대기 시작하더니, 사무실에서도 인터넷에서 뭘 좀 읽었는지 아는척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어 겨우 자제시키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바로 예매. 수영 끝나고 11시 15분 왕십리 CGV IMAX에서 관람. 끝나니까 2시 7분.

스포일러라는게 사실 그닥 대단한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극의 전개와 이해에 관여하는 어떤 반전 요소를 미리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스포일링 하는 그 행위 자체의 무례함과 그 뜨악함에서 오는 불쾌감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 고의로 그러거나 몰라서 그랬거나 당하는 입장에서 화딱지 치미는 건 마찬가지. 스포일링 당한 최악의 경험은 올드보이 관람 도중에 오대수가 일식집에서 미도와 처음 조우하는 순간 앞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친구에게 물었던 말. 쟤가 딸이야? 여하간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그런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늦은 시간임에도 관람을 강행.


1.

다크나이트 때 죄수의 딜레마 설정이나 하비 덴트의 정의가 어떻게 투페이스로 변화하는가 등의 묘사를 보며 나름 꽤나 무거운 주제를 던져준다 싶었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까지 다 보고난 뒤의 감상은.. 그런 것들은 사족이고 결국 메인은 브루스 웨인의 성장기가 아니었나 하는 그런.

비긴즈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박쥐를 페르소나 삼고, 부모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뒤섞여 자경단이라는 생뚱맞은 형태이긴 해도 어쨋든 고담시에 대한 아버지의 의지를 계승하던 부분. 다크나이트에서 정의의 수호자 역할을 하비 덴트에게 맡기고 은퇴할 수 있었으나 조커의 농간으로 안티히어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그리고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의 결말까지 보면 결국은 브루스 웨인의 성장통 이야기.


2.

그렇게까지 하면서 고담시를 지켜야 했던 배트맨의 사명도 잘 이해가 안되기는 하지만 - 도대체 왜? 민초들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 살부(殺父)의 통과의례를 가질 수 없는 웨인에게 씌워진 아버지의 유훈? 어쩌면 초법적 행위 자체에 대한 애착? - 그보다 더 이해가 안되는건 고담시를 파괴하지 못해 안달이 난 각종 빌런들. 어느 한 사회를 망가뜨리는 건 이런저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정책이 제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잘못된 결정을 이끌거나 그런 멍청한 인물을 자리에 앉히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을, 이렇듯 순수하게 도시제거 자체를 목적으로 그 정도 기획을 한다는건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닐런지.

차라리 Why so serious?라고 말하고 왜 계획을 세우고 사느냐던 조커의 멘탈이 더 그럴듯하다.


3.

베인의 선동과 민중의 봉기는 섬뜩하면서 지리멸렬하다. 민심이 천심이라거나 닥치고 정치 식으로 피플 파워를 긍정,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대중이란 결국은 우중이기 쉽고 뛰어난 선동가에 의해 인민재판같은 광기를 보일 땐 이보다 더한 악몽이 어디 있으랴 싶은게 황빠 심빠의 난이 오래지 않은 탓일터. 그런 기억을 돌이켜보면 결국 시민들의 힘으로 가능한 건 도대체 무엇인지 회의할 수 밖에 없고..

히어로물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이유는 그렇다고 이 세상이 소수의 몇몇 초인들에 의해 바뀌거나 지탱된다고 믿고 싶지도 않기 때문인데, 이런 류의 생각이 자칫 엘리트주의와 선민적 사상에 물들기 쉬운 때문일 것이다.

8년간의 평화가 끝나고 베인의 등장과 함께 배트맨이 다시 나설 수 밖에 없었다거나, 블레이크가 처음의 소신을 접고 법에 의하지 않는 정의 실현의 길을 선택하는 것 모두, 아니 애시당초 고담이라는 도시의 존재 자체가 피플 파워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어쩌면 그게 실상 현실에 가장 가까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4.

브루스 웨인의 성장기로 보건,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의 자정 기능을 누가 해야 하는가의 관점으로 보건 어쨌든 삼부작의 훌륭한 완결.





And




0.

엔브렐 처방 이후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거의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해부터 왼쪽 발목이 메롱메롱하더니 기어이 사단을 냈다.
왼쪽 발목을 제외한 다른 관절은 주사 주기에 관계없이 거의 속썩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왼쪽 발목도 현재 강직성 척추염의 진행에 따른 증상이라기보단, 예전에 한참 아프던 때에 관절 변형이 생긴 탓이 아닐까 싶다.
엔브렐이 의보 대상 의약품으로 지정되기 전 MTX 등으로 대응하던 때 염증이 심했던 자리가 결국은 수년의 시간을 두고 누적된 무리로 맛이 간 모양이다.

류마티스 내과 의사의 소견이 정형외과 진료를 보자는 것이었고, 정형외과 의견으로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 원래 평발인 발바닥 아치가 더 플랫해졌고 오른쪽 발목과 비교할 때 바깥쪽으로 돌아가 변형이 생겼으며 발목 안쪽 힘줄이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뼈조각을 발 외측 관절 사이에 삽입해 바깥쪽으로 돌아간 발목이 다시 안쪽으로 교정되도록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약간의 아치가 회복될 것이며 문제의 힘줄은 절개하고 손상 정도에 따라 발가락쪽 힘줄을 끌어다 묶는 방식으로 수술을 한다고.

회사에 3개월 병가를 냈고, 5월 16일 수술을 받았다.




1.

수술은 의도했던 대로 되었다 하고, 2주 하고 며칠만에 퇴원.
통깁스도 통깁스려니와, 수술한 자리의 뼈들이 붙고 자리를 잡을 때가진 발을 절대로 디뎌선 안된다 하여 집에서는 바퀴달린 효도의자 타고 다니는 칩거 생활 시작.




2.

근골격계에 문제가 생기면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3.

아들 걱정에 반찬거리 조달하는 모친의 정성이야 백번 감사해도 모자랄 일이건만, 정작 얼굴을 마주하면 매일같이 성질부리고 싸우게 된다.
밥먹는다는 것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의 하늘과 땅같은 차이가 빚어내는.
요컨대 모친 보기엔 당최 잘 먹어야 얼른 건강해질 것을 도통 아들놈의 먹성과 그 양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이요, 아들 생각엔 뭘 어떻게 먹든 필요한 칼로리와 영양소만 얻으면 그만일뿐 그 이상의 호들갑이 귀찮은 것인데, 그 괴리에서 오는 참으로 불필요한 말싸움과 스트레스가 제법 상당했다.
잘 먹지 않는 아들에 대한 불만이 잘 해먹이지 못하는 며느리에 대한 핍박으로 이어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




4.

결국 정신건강의 훼손은 적당히 규칙적인 생활과 적절한 외부자극이 결핍되는 데서 시작하는 듯. 두다리가 멀쩡할 때야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거나 마음이 멀리하는 곳을 피하면 그만이니 별 문제될게 없었으나, 내 의지대로 가고 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우울증과 패닉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5.

칩거하는 동안 훑거나 감상하거나 소일거리 삼았던 것들.

BBC 셜록
빅뱅이론
집시의 시간
야곱의 사다리
디스트릭트9
용의자 X의 헌신
7년의 밤
창가의 토토
안티조선운동사
만들어진 한국사
문재인의 운명
정재승/진중권 크로스
십자군 이야기
총,균,쇠
딴지 라디오 나는 꼼수다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엔하위키
우분투

그리고, 11번가..




6.

지난달 중순부터 다시 출근 시작.
아직은 목발이 필요하고 차를 끌고 출퇴근 하는 수준이지만 추석 지나고 발목에 힘 좀 붙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금방 좋아지겠거니.




7.

나중에.
올해 여름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And



원글 자체는 뭐 대단한게 아니니 딱히 아까울 것 없으나, 거기 달렸던 댓글과 대댓글이 다 날아간다는게 좀 불쾌하다.
어느 대목이 심기를 불편케 했길래 명예훼손씩이나 되는 사유로 신고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나라면 반론을 트랙백하거나 댓글을 달았을 거다.
그게 맞는거라고 생각한다.

개싸움은 포기한다.



And





조직의 재발견 : 한국 자본주의와 기업이 빠진 조직의 덫 / 우석훈 지음. -- 서울 : 개마고원, 2008



읽고 난 감상은..
늘 뭔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모순들이 제법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
다 공감하진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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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는 회사의 지금 부서에는 상조회라는 비공식 조직이 있고, 부서원들로부터 매월 직급별로 1~3만원 가량을 추렴하여 각종 경조사 및 회식 지원에 지출한다. 관례적으로 임기는 1년이고 매년 망년회 자리에서 특별한 선출/임명 절차 없이 얼렁뚱땅 등떠밀리는 식이나 거수 등 그때그때 편한 방식으로 정하게 된다.

회사는 내가 사원이던 무렵의 언젠가부터 GWP(Great Work Place) 라는 것을 도입하여 매해 10월 쯤 정기적으로 부서별 index를 조사하고 있다. 직역하자면 일하기 좋은 직장 정도가 되는데 통상 높고 꾸준한 업무 강도를 요구하는 부서일수록 그 점수가 현저히 낮게 마련이다. 그 조사 결과가 어떤 식으로 이용되는지는 알지 못하나, 제도 도입 이후 각 부서에는 GWP 활동을 위한 전담 보직이 만들어졌고, 대개 그해 상조 조직의 회장이 GWP 담당을 겸직하게 된다.

말이 전담이지 실제로는 원래 하던 업무를 고대로 다 하면서 거기에 더해 회식 장소 챙기고, 조직력 강화 행사 기획하고, 부서원들의 불만 요소를 찾아 제거하여 궁극적으로는 GWP index를 향상시켜야 하는 게 그 사람에게 더해지는 업무목표이다.

사내에서 아니 적어도 부서내에서조차 그 어떤 행정적/인사적 권한 없이 그저 각종 행사의 실무 진행만으로 뭔지 모를 그 스트레스와 불만을 제거하고 GWP index의 향상을 꾀하라는 지시 혹은 발상 자체도 우습거니와 이게 담당자를 하나 둠으로써 해결될 성질의 것인가에 고민이 미치면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우리부서의 상조회장 겸 GWP 담당은 나다.  ㅜ.ㅡ

지금은 상무가 된 그 상무가 지금 부서의 부서장이던 시절, 이게 혹시 다면평가 관점에서 과락 사유가 될지도 모르니 아예 좋은 점수를 줘서 임원진급을 시켜 보내버리자는 모종의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그 해를 제외하고, 우리 부서는 늘 팀 내 최하위권의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현상은 GWP index 가 낮다는 것.
미션은 그걸 끌어올리자는 거.

GWP 업무를 떠나 내가 볼때 문제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일단 하나는 GWP index 결과 자체가 보여주는 회사/상사를 향한 불만의 내용들이며
그보다 더 심각한 다른 하나는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상사는 뭘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점.

말로는 창의적인 생각을 독려하면서 실제로는 일사분란함과 획일성을 최고로 치고, 매사 소통이 잘되어야 한다고 주절대면서 막상 예스맨이 아니면 곧 네거티브가 되는 이런 조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만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것이길래 GWP 응답 결과는 그렇게 나오는 것일까.

우석훈 박사의 '조직의 재발견' 내에 기술된 내용으로 이 부서를 해석하자면 이런거 아닐까.

회사/상사는 일방적 업무지시와 신속한 이행에 익숙하다.
이에 거부감이나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예스맨류(類)가 있다.
이와 대비대는 네거티브군(群)도 있다.
고과의 배분이 상관관계를 갖는다.
조직 내에 라인이 형성된다.
조직 내에서 공공연하게 정글, 서바이벌 등의 용어를 통해 내부경쟁을 암시한다.
나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야근 등의 의태(疑態)가 생존을 위한 개인전략으로 채택되고,
그 결과 정보/기술 공유에 인색해지고 비밀리에 이직/전사공모 등을 준비한다.
회사/부서의 주요한 결정들은 예스맨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창의니 혁신이니 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

적어도 지금 있는 조직은 그렇게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는 중이다.















And




0.

도대체가 몇개월만의 글인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바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몇자 끄적거릴 짬도 없을만치 바빴단 건 거짓말일테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게 더 그럴듯한 핑계일지도.

하고 싶은 얘기가 목구멍에 치밀어 오르기 전까지는 글 쓰지 말라고..
누가 그랬단 얘길 어디서 들어본거 같기도 한데,
치밀어 오르느니 오로지 욕지거리요,
그 욕을 부러 꾹꾹 눌러담은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는 미명하에,
시시때때로 배욕의 쾌를 벗삼아온 터라
굳이 뭔가를 써볼 의욕이 생기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1.

자라면서 늘 내 인생의 스승을 찾았더랬다.
큰바위얼굴.. 같은.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 선생들에 대해 유난스레 실망이 많았던 것도
학교 선배들과의 세미나가 단 한번도 흡족하지 못했던 것도
내 결혼 때 주례를 맡기고 싶단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교수가 단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도
군대에서 마주쳤던 여러 장교들이 한결같이 어처구니 없었던 것도
어쩌면 내 기대치가 마치 성인군자를 기다리는 수준이었던 탓일까나.

회사에 들어온지 어언 9년.
드디어 내 인생의 완벽한 반(反, anti)스승을 만났다.
이 이상 더한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완벽한 반면교사로서의 롤모델.
나중에 나이가 들어 기억이 가물가물해져도
2009년은, 아.. 그 사람 때문에 참 힘들어했던 시절이었지.. 로 기억될게다.

완벽한 무능.
그 어떤 종류의 리더십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게 0에 수렴하는 카리스마.
무식과 귀닫음, 똥고집의 시너지.
완전무결한 내 인생의 걸림돌.



2.

내 기억이 점점 의심스러워지는 요즘.

출퇴근 중에 PMP 에 이런저런 미드나 일드, 애니 등을 담아서 짬짬히 보곤 하는데,
요 얼마전에 "나디아"를 달렸더랬다.
내 고딩 때였는지, 대딩 때였는지 TV에서 해주던 당시에
중간 몇몇 회분에서 그림이 굉장히 구렸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 다시 본 총 39회분은 모두 멀쩡했다는..
그게 지금도 기억이 나는 이유는
그 당시에도 보면서, 아니 그림이 왜 이렇게 후져졌지? 어디 다른데다 외주를 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한 탓이다.
설마 방송국에서 짝퉁을 만들어 방영했을 리도 없고..
하여간 미스테리다.



3.

내 국딩 5년 땐가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이 베스트셀러였었더랬다.
중딩 때쯤 아버지더러 퇴근길에 좀 사다 주십사 했더니만
어버진 매양 그게 다 그건줄 알고 그만 짝퉁을 사오셨던 것이었다.
소설 손자병법, 장도명 著, 도서출판 은광사.

비록 짭이지만 재미있었다.
훗날 기어이 찾아 읽어본 정비석 버전과 비교하더라도
정비석 특유의 상투적인 인물묘사에 비추어
오히려 한결 생생하고 치밀하다는 게 내 소감이었다.

그렇게 주욱 잊고 살다가
회사 도서관에서 가이온지 초고로.. 라는 일본인이 쓴 소설 "손자"를 보게 되었다.
아니 근데 시밤 이게 내가 어려서 읽었던 그 장도명 버전의 소설 손자병법과 내용이 완전히 똑같은 것이었다.
역사소설이니 사건이야 뭐 다를 수 없겠지만,
공처가이면서 전쟁사 덕후로 묘사되는 손무의 캐릭터나
입신양명하여 가문을 일으켜야 하는 부담, 손빈에 대한 질투와 컴플렉스로 만들어진 방연의 모습은
설마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같을 순 없는 것이었다.

내가 읽은 게 87년 판본이고
가이온지 초고로란 사람이 쓴 책의 발행일을 조회해보니 98년으로 나오길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좀 어리둥절 했었는데,
찾아보니 그 일본인 저자의 생몰이 1901~1977 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98년은 한국어판 초판 발행일인 듯.
결국은 내가 어려서 읽은 그 내용이 베껴 쓴 거 맞는 모양이다.



4.

연말께까진 계속 이렇게 바쁠테지만
그래도 다다음주 쯤 되면 적어도 지금보단 좀 나아지겠지..

힘들지만 암중모색의 시기로 여기기.


















And




나중에 딸아이가 크면 지금 이 시대를 돌이켜 어떻게..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And




언제부터 도덕성이란 잣대가 변화를 바라는 이에겐 필수가 되었고, 구태들에겐 옵션이 되었나.
비자금이니 탈세니 하는 것에서 감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 매번 이를 작업의 첫단추로 활용한다.

세무조사, 검찰, 받아쓰기 언론의 팀플레이가 이를 확대재생산하여 의혹을 기정사실화시키고 여론을 호도하며 점찍은 공격대상을 하나씩 하나씩 부수어 가고 있다.
이에 대해 이슈를 제기하고 여론을 환기시키려는 촛불 등의 시도들은 경찰에 의해 아예 그 시도조차 봉쇄되고.
그렇다고 그런 조직적 움직임을 저지할 수 있는 야권이란게 있기는 한건지.
차마 상상하기 힘든 모양새로 노무현이 쓰러졌고, 한예종과 진중권이 그런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을 받고, PD수첩이 그렇고, 엄기영과 MBC가 딱 그런 패턴이다.

상대팀의 한결같은, 하지만 효과적인 공격 패턴에 계속 실점하고 있는 축구경기를 보는 것처럼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상대편보다 오히려 내편에 대해 짜증을 내고 화풀이를 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
왜 그런 공격 패턴을 못 읽어내는가에 대한 불만,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술이 왜 준비되어 있지 않는가에 대한 갑갑함, 코칭스탭과 선수들 사이의 소통의 문제.

국개론이니 20대개X끼론이니 하는 썰이 왜 생겨났는지 그 발생의 기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그런 의견을 진지하게 주장하는 것도 그 맞고 틀림을 떠나 현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축구 경기를 보면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이 승패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 만큼이나 확실하다.

나라 꼬라지가 참으로 메롱메롱하게 돌아간다.





And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듀게의 몇몇 분들이 의견을 내고 신문사에 연락하고 모금을 하는 등 수고를 해주셔서 영결식이 있었던 5월 29일자 한겨레와 경향 두 군데 전면으로 실린 추모광고 이미지. valentine30 님 작품. 모금 이틀만에 이천만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한 부씩 샀다. 나중에 딸아이가 크면 그 아이는 어떤 걸 묻고, 또 난 어떤 얘길 하게 될까.



1.

서거 소식이 전해지던 날, 전날 밤새 마신 술로 지독한 숙취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TV를 켜고는, 술이 덜깨 헛소리가 들리는 줄 알고 머리를 흔들어댔었다. 이후에 든 생각은.. 과연 그다운 방법을 택했구나..

노무현을 이야기하는 가장 안전한 길은, 난 노빠는 아니라는 말로 시작해서 대선 때는 지지했지만 당선 이후 이라크 파병이나 대연정 제안, 부동산정책, 한미FTA 등과 같은 행보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이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일 게다. 나 역시 그랬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합리화와 면죄부는 아니었을까.

그에게 던진 한 표, 그리고 탄핵정국에서 그를 위해 들었던 촛불은 아마 그런 모습 때문이었을게다. 그 소신과 의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하는 싸움꾼의 모습, 그 지점에서 다른 정치인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진정성. 그렇게 온 진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앞에서 느껴지는 부끄러움. 그에 대한 변명과 합리화.

재임 시절의 공과에 대해서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앞으로의 역사가 말해주겠지만, 과연 우리는 그런 대통령을 또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이리도 허망한 그의 죽음 앞에 새삼스럽고,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2.

추모의 분위기가 식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수구들은 그를 부관참시하여 순교자의 이미지를 걷어내려 하겠지.
분위기에 눌려 채 입을 놀리지 못하고 근질근질해 하던 이들까지 합세하여 이제 곧 경쟁적으로 누가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지 치열한 레이스를 벌일 것이며, 버러지같은 MB정권은 떨어지는 지지율과 광장에 대한 공포로 생사람 잡는 만행을 계속할 것이고.
반한나라당 전선에 선 이들은 저마다 노무현의 계승자임을 내세우며 분열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 아이는 학교에서 유신헌법을 외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이라는 건 점점 희미해져가고 우린 안될꺼야 류의 자조감이 밀려드는 걸 어찌할 수 없다.



3.

생각하면 할수록 도대체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MB와 언론, 떡찰을 향해 분노하는데, 세상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라서? 생각이 이쯤 미치면 국개론이 아주 허튼 소리는 아니라고 여겨질 때도 있다.



4.

한 사람의 영웅을 기다리는 일 따윈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가 있을거란 기대도 없지만,
설령 나타난다 한들 우린 어쩌면 알아보지도 못하고
다시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에게 또 어떤 기대와 숙제를 잔뜩 던져둔 채
입과 손가락만 살아 힐난할지도.

영웅을 기다린다는 건
아마도 다시 나를 변명하고 합리화 하기 위해
대신 돌을 맞아줄 누군가를 찾는 거 아닐까.

필요한 건 영웅이 아니라
나 자신의 행동.



0.

저 타이포그라피의 자구들, 그 가치들을 그와 더불어 기억하고자 한다.








And




사용자 삽입 이미지

...



And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And


0

진급을 했다.
연봉은 조금 오르긴 했으나, 그래봤자 공돌이 월급이 금융권에 비할 바 못되고..
그나마 야근수당 대신 주던 교통비가 올해부터 사라져버렸고, 그 외에 과장급부터 적용되던 유류지원비도 슬그머니 없어진 듯 하다.
진급자 외에는 동결이니 실질적으로는 줄어든 셈.
지난 1,2월께 매체를 통해 신입사원 임금 수준이 높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부터, 회사 동료들에게 말하길, 신입사원만 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점차 낮은 쪽으로 수렴할 것이며 우리 급여도 분명히 깎인다고 장담을 했는데 예상대로 되어가는 국면이 마냥 씁쓸하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job sharing의 일환이었다면 여가라도 늘어나는 것을 위안삼아
적어도 나중 세대와의 고통분담에 함께 했다는 명분은 섰을 것을..
사회적 합의 없이 지표상의 실업률을 어떻게든 축소시켜보려는 이런 식의 분위기는 기분 나쁘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는 표현이 지금 사측 입장에서는 딱인 듯.



1

진급자 회식을 하던 날.. 40명이 채 안되는 부서원들이 모여 한우 꽃등심 450만원어치를 작살냈다.
PL과 TL은 그간 꾹 참아왔던 걸 터뜨리기라도 하는 양, 과장 직급부터는 이제 '노'가 아닌 '사'측이라는 말머리로 시작하여 온갖 회사의 명운이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격려와 치하와 구슬림과 엄포, 공갈, 협박이 뒤섞인 묘한 뉘앙스의 공치사를 한다.
그렇게 중요한 위치인 것을.. 그 동안 그 위치를 지나간 이들은 왜 그정도 밖에 못하고서도 더 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겉으로야 멀쩡히 충성맹세의 시늉을 하는 나 자신도 참으로 직딩 9년차 농익은 속물이 다 된 모양이다.
회사는 대외에 배포한 홍보자료에서는 인위적 구조조정이 없다 했지만, 금번 인사 결과를 보면 부장급 인사에서도 대략 고참들을 누락시키고 그 후배들을 먼저 끌어올린 것으로 보아 내심 알아서 나가주길 기대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렇다고 순전히 능력으로 평가했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게, 내가 혐오해 마지 않는, 얼른 사라져야 할 무능한 구세대 0순위였던 사람은 기어이 되고 말았으니 회사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당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이 곳이 평생직장과는 거리가 먼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이고..
나는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2

입사 동기지만 석사 학위를 갖고 들어와 2년의 경력을 인정하는 사규에 따라 2년 먼저 진급한 모 과장의 경우에 예의주시한다.
이 사람이 반골기질로 가득찬 아랫것들과의 대화가 어색해지고 전적으로 조직의 윗사람들 목소리에 동화된게 거진 과장 진급을 했던 2년전, 그 즈음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가 적절한 타이틀을 달면서 각성을 하게 된 것일까, 정작 그는 다른 이들이 이런 변화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할 것인가 등등.
비단 그 사람이 아니고서도 이런 종류의 사례 하나하나는 어떤 학습효과를 유발하여 아랫 사람들로 하여금 딱 그 사이에 더욱 두꺼운 벽을 치게 만든다.
불과 지난달까지 '선배'였던 나에 대한 호칭이 '과장님'으로 바뀌면서, 내가 변하고 변하지 않고를 떠나 그런 지금까지의 학습들로 인해 후배들은 이미 벽을 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달라지겠지만..
저런 식으로는 달라지지 않으리란 다짐을 해본다.



3

임금과 job sharing 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쩔 수 없이 '88만원 세대'라는 어휘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들의 의식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 후배들과의 대화는 종종 답답한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곤 한다.
번듯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을 지칭해 만들어진 용어가 무슨 뜻인지조차 몰라 최저생계비라는 둥, 그.. 의사면서 주식 칼럼 쓰는 그 사람이 쓴 책 아닌가요.. 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그 중에는 중앙일보를 보면서 신문기사가 다 똑같죠 뭐.. 라는 여사원도 있고, 용산 철거 관련 시위의 진압 뉴스를 보고선, 크레인으로 콘테이너 통채로 끌어올리려서 거기서 특공대가 나오는데 존나 멋있더라.. 정도의 사고 밖에 하지 못하는 녀석도 있다.
어찌보면 그네들과 386세대 사이에 끼어있는 나부터도 기성세대가 가진, 쥐고 놓지 않는 그 철옹성같은 기득권에 아득함을 느끼고 화가 치미는데, 정작 나보다 더 분노해야 할 이들 가운데에는 그 프레임 밖으로 나와서 바라볼 수 있는 지성이 적어도 오프라인에서 내 주위엔 별로 없고.. 그래서 더 막막하다.



4

일전에 종교에 관련하여 썼던 글에 달린 덧글에서 어떤 분께서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함 읽어보겠노라 답글을 달고서, 까맣게 잊은 채 지내다가..
그  분이 거의 일년만에 들려서 댓글을 남겨주시는 바람에 황망해하며 내 게으름을 탓하고 부랴부랴 챙겨보았더랬다.
매제가 목사인지라.. 물어보니 있다길래 빌려 보았는데,
'순전한'으로 번역된 'mere'라는 단어의 뜻이 대충 just 정도로 해석되고 서문에서도 밝히듯이 기독교 여러 종파 사이의 미묘한 신학적 이견을 배제하고 기독교라는 몸통, 그 본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으로, 몇몇 비유에는 깊이 공감하였고, 구구절절이 좋은 말이나 그렇다고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고..
변증이라 하기엔.. 어디 신에 대한 이야기가 변증이 가능한 주제였던가..
비록 지금 냉담 중이긴 하나 신의 존재를 어떤 확신을 가지고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마당에 개심이네 뭐네 할 정도도 못되고.. 사다놓고 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 나면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5

정작 나 자신은 냉담 중이면서 딸아이 유아세례를 걱정하고 있다.
세례명을 뭘로 할까..
나는 프란치스코, 집사람은 글라라.. 찾아보니 그 두 성인이 동시대 사람이었다더라..

딸아이가 얼추 넘어지지 않고 잘 걷기 시작하면서 마트에 데려가면 혼자 걷게 두고 뒤를 따라다닌다.
지난번에 갔을 땐 또래 남자 아이한테서 대시도 받고..
첨에는 제법 도도한 척 눈길도 안주고 니모를 찾아서 DVD 박스만 만지작거리더니 그 남자 아이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니 되려 졸졸 쫓아 가더라는..
아.. 이녀석이 나중에 남자친구라고 데려와 인사시킬 땐 어떤 기분일까..



6

개그콘서트 중 '분장실의 강선생님' 꼭지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요즘.
아직까지는 안영미의 원맨쇼이지만..
조직 내 위계질서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강유미나 정경미 포지션에서도 꺼낼 소재가 많아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빵빵 터지는 코너가 될 듯.



7

그러고 보니 올해들어 첫 글인데 벌써 한 분기가 지나려한다.
세월은 참으로 유수와 같고 잡을 수가 없고나아..












And




0.

이 그지같은 조선땅은 물론이거니와 온 세계가 경제위기로 난리다.



1.

여전히 "이게다노무현때문이다"를 마법의 주문처럼 되뇌이는 이들도 있고,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미국인들의 지성을 예찬하는 목소리도 있고,
언제부턴가 미네르바라는 이는 인간의 존재를 초월하여 반신의 경지에까지 오른 듯 하다.
아.. MB께서 다 해주실꺼라던 그 아주머니와 질질 쳐울던 청년백수 영민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네들로 대표되는, 이명박을 지지한 지지리 못사는 쥐뿔도 없는 이들의 소회가 듣고 싶건만.



2.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라는 가치는 그럭저럭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가는가 싶다가 MB의 치세 이후 후퇴하여 역주행을 하고 있다 치더라도, 평등이란 건.. 과연 이 나라에 단 한시절이라도 있어본 적이 있나 싶기도 하다.

조선시대와 같은 반상의 구분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이 나라는 신분제 사회이며 계급국가이다.
철저하게 자본의 유무에 따른.



3.

미네르바의 신탁이 내렸던 다음 아고라 경제방을 종종 눈팅한다.
절대다수의 추천을 받은 글들은 대개 이명박과 강만수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조롱과 분노이며,
그것이 왜 틀렸는지, 아파트값이 왜 반토막이 날 수밖에 없는지
나름의 상세한 분석과 전망을 담고 있다.

뭔가 좀 이상하다.

소득수준 대비 비정상적인 가격 상승, 베이비붐 세대 은퇴 이후 인구구조의 변화, 세대 구성의 변화, 공급초과와 수요미달,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위험성, 과도한 레버리지...
그 똑같은 이유와 설명을, 난 지난 수년동안 들어왔지만 그 지난 수년간 내내 아파트값은 오르기만 했었고 낙폭의 대부분은 최근 수개월 사이에 생긴 것 아닌가.
미국으로부터의 적신호가 켜지지 않았더라면 최근의 이런 난리통도 아직은 오지 않았을 터,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미친 듯 오르고 있었을테지.
과연 전술한 저런 이유와 분석에 따라 하강국면으로 전환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여러 가능성 가운데 단지 현재의 상황으로 이어진 나비효과일 뿐인 것인가. 그렇다면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 이 변곡점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모델과 수식은 없는건가.

아고라인들은 상위 1%, 혹은 10%에 대비되는 중산층 이하 서민을 지칭하여 스스로를 천민으로 표현한다.
1%, 10%, 천민.. 그 구분의 잣대는 무엇인가. 소유자본의 정도.
그런 표현을 쓰는이가 누구건간에 1%니 천민이니 하는 기표의 의미 자체는 명확하고, 명확하게 전달되고 이해된다.
대한민국은 소유자본의 많고적은 정도에 따라 신분과 사회계급이 결정되는 체제이며, 국민 대부분은 이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포괄적 공범이라고나 할까.



4.

주위에서 집값이 얼마가 올랐네, 펀드로 얼마를 벌었네, 요샌 변액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심 배가 아팠던 것도 사실이고, 당최 내팔자에 집한채 장만하기도 요원한 일이런가 싶었는데, 따지고 보면 어차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허용된 개개인의 경제행위일 따름 아닌가.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시장은 완전하다 하는데, 그 책임은 온전히 리스크를 감수한 개개인의 몫인가, 아니면 제도와 법령을 통해 적절한 균형을 유도하지 못한 정부의 탓인가.

분위기가 이리 되니 이제 아고라 뿐 아니라, 디씨의 여러 갤러리와 각종 부동산싸이트에서도 이제는 폭락론자들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 의기양양함 한편으로는 빚내서 상투잡은 이들에 대해 고소해하는 마음과 뭔가 확 뒤집어지길 바라는 과격한 기운까지도 느껴진다.
그네들이 원하는 건 진정 아파트 가격의 폭락일까? 그 다음엔? 헐값이 되면 그 때 자못 뿌듯하게 그 아파트에 입성하고 싶어서일까?

이 나라가 진정 평등하게 대접받고 균등한 기회를 갖는 사회가 되길 원해서일까, 아니면 이 난리통에 내 신분을 끌어올리고 면천할 수 있는 길이 생길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일까.



5.

말이 경제대통령이지, 많은 이들이 아파트값 때문에 이명박을 지지했고, 또 많은 이들이 같은 이유로 같은 사람을 비판한다. 집값이 다시 오르면 이 정권의 지지율도 같이 오르겠지.

언론을 장악하고, 사회비판적인 고발 프로그램과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집회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더 많이 쓰고, 복지 예산을 줄이고, 가진자들에게 감세를, 못가진자들에게 애국을 강요하는, 사교육이라는 시장을 위해 공교육이 어찌되건 상관하지 않는, 도대체가 돈 말고는 무슨 철학이 있는지 알길이 없는, 이 지랄같은 나라의 병신같은 국민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내 가진 아파트 가격이 오르느냐 떨어지느냐에 따라 주권을 행사한다. 대통령이건 교육감이건 보궐선거건. 그 한결같음이 어머씨발 아름답다.



6.

잡겠다던 정권은 올려놓고, 올리려는 정부가 들어서선 떨어지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그러했듯, 근자의 집값하락도 그 시작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기인한다.
우리의 각성과 행동, 사회적 합의로 이룬 건 아무것도 없다.
해방 이후 수십년동안 끝내 친일청산을 해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는 소유의 편향과 심해지는 양극화, 세대간 착취구조를 벗어나기 위한 사회구성원 간 모종의 합의를 끝내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바마를 찍은 그 훌륭한 미쿡인들은 불과 몇해전에 부시를 찍었던 그 사람들이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하는 건 그렇게 바뀔 수 있는 그 가능성과 기회의 여지여야 하고,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좌빨이니, 노무현때문이니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저능한 사고 수준인 것이다.



7.

IMF 이후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차지하는 가장 큰 카테고리는 "경제"가 된 것 같다.
경제도 문제지만 그게 다가 아닐진대...

뭔가 희망을 가져보고 싶지만, 이명박을 지지했건, 하지 않았건 어찌됐든 우리는 적법한 투표와 선거절차에 의해 MB 정권을 탄생시켰고, 그 기저에는 아파트로 대변되는 개개인의 경제적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이 있었으며, 그 욕망이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했던 시대를 만든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정말 문제는 경제였을까. stupid...







And




0.

나는 무슨무슨맨 종류의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슈퍼맨은 일단 그 패션에서부터 비호감이고, 스파이더맨은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서도 히어로로서의 삶의 고단함이라는 설정 자체가 불쾌하다. 배트맨은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꽤나 멋들어진 영화로 거듭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거대자본가로서의 부르스 웨인과 고담시의 수호자 배트맨이란 조합은 왠지 위선적인 느낌이다. 엑스맨들은 마냥 유치해서 싫고, 아이언맨이나 핸콕 같은 건 아예 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볼 계획이 없으니 따로 뭐라 할 말이 없다.

굳이 히어로 장르가 아니더라도 어느 등장인물이 영웅시 되는 것에 대해 지독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마지막 부분에서 막시무스의 죽음 이후 갑자기 웬 여자가 나서서 영웅의 죽음을 헛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 부분만 없었어도 나는 그 영화를 지금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게 봤을지 모른다.

히어로로서 사는데 대한 인간적인 고뇌를 적당히 가미하여 현실적으로 묘사하면 할수록 그 싫은 느낌은 더해진다. 어차피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먼 진부한 설정을 어떻게든 말이 되게 설명하려 드는 것이 훨씬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그런 느낌. 아예 무협지 같은 설정이라면 차라리 마음편히 즐길 수 있을텐데..

아뭏든 나는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 생각한다.



1.

요 몇주 전부터 회사 내에서 대화가 좀 통한다고 생각되는 이들끼리 비정기적으로, 허나 대충 주 1회 정도의 빈도로 술자리를 갖고 있다.

거창하게도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부터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고, 어줍짢게도, 누군가 우리 대화를 들을까 참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나,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여러 이론들을 겁없이 인용하며 직장 상사와 동료들을 무참히 분해하고 조립하고.. 뭐 그러는 중이다.

대화의 소재는 종종 우리 자신이 될 때도 있는데, 나름 나 자신에 대해 꽤 많이 객관적 시각으로 보아왔었다고 자부하면서도 종종 멤버들의 예리한 지적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리하여 최근 내가 가진 생각들 중 내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몇 가지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해보고 있는 요즘.



2.

미드, 일드 보는 재미에 빠져 사느라 국내 드라마는 공공연히 개무시를 하고 있던 참이었더랬다.
그랬던게.. 최근에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화원" 때문에 양상이 바뀌어.. 닥본사 모드다.

가만 보니 둘 다 천재를 다루는 얘기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작은 강건우(장근석 분)나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문근영 분)이라는 인물은 모두 범인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고 묘사된다.

남들과 다른 어떤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점에서, 천재.. 라는 것이 모양을 달리한, 일종의 히어로물로 치환 가능한 것이라면 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싫어해야 마땅하겠거늘.. 곰곰 돌이켜보니 나는 이런 종류의 천재를 묘사한 이야기들을 무지하게 좋아하고 있었다. 굿윌헌팅이라든가.. 사기열전에서 손빈에 대한 이야기나.. 삼국지의 제갈공명 캐릭터, 아마데우스는 뭐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김용의 사조삼부곡 가운데에서도 곽정보다 양과의 캐릭터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이런 종류의, 소위 재능있는 인물상에 호감을 느끼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예술과 학문적 재능을 타고 나는 것과 물리적 신체적 힘의 남다름을 같은 맥락에서 볼 것인가 하는 여지는 있겠지만, 구분하여 생각하더라도 왜 어떤 종류의 재능에 대해서는 호감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른 한편에 대해서는 그러한 설정만으로도 짜증을 내고 불쾌해 하는지, 그 사이에 내가 놓치고 있는 어떤 중요한 맥락이 있는건 아닌지..



3.

천재를 다루는 모든 창작물은 필연적으로 천재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는 다른 많은 범인들을 필요로 한다. 그 천재를 더욱더 두드러지게 만들려면 천재 자신이 좀 더 센 능력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다른 범인들이 위치한 그라운드 레벨을 끌어내리면 된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은 어쩌면 평균 정도도 되지 못하는 수준들로 묘사된다. 캬바레 출신의 트럼펫, 이제는 치매 노인인 오보에 주자, 고교 중퇴 소녀의 플룻, 20년의 공백을 갖는 첼로 전공 전업주부.. 강마에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이들은 - 자신의 꿈을 제대로 파악도, 꾸어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실현하기 위한 재능도, 가능성도 없는 - 쉽게 말하면 "루저"인 셈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화원들과 도화서 생도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4.

내가 주성치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그의 영화에서 세상의 "루저"들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을 느끼면서부터였고, 2MB 정권과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들이 이 사회의 "루저"들과 함께 공존하겠다는 의지나 배려가 없음이 너무나도 명명백백하기 때문이다.

천재와 히어로 사이의 뭔가 석연치 않은 내 일관되지 않은 감정과 마찬가지로 "루저"를 대하는 나의 개념 역시 정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가끔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곤 했었는데, 과연 나 자신이 진정 "루저"를 향한 애정을 가지고 그런 소리를 했는가 묻는다면 글쎄..

나는 위키피디아를 애용하면서도 네이버 지식인의 예를 들어 집단 지성이란 것의 효용에 한계를 두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바보같은 답변들을 보며 누군지도 모를 이를 향해 조소와 쌍욕을 날린다. 나는 똑똑한 개개인이 모였을지라도 그 모인 대중이 보이는 행동양식에 대해서는 지극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예측을 한다. 이 나라 국민의 아파트에 대한 집착을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 가능하다고 믿는다. 지지리 궁상으로 하루 벌어먹기도 힘에 부친 이들이 한나라당을 찍는 행동을 비난하고 저주한다. 트로트를 싫어하고, 어쩌다가 출발 비디오 여행 할 시간에 전국노래자랑 봐야되는 상황을 몹시 고역스럽게 여기며, 전국노래자랑에 나와 오버하는 이들을 혐오하고 경멸한다.

이런 내가 이 사회의 "루저"들을 향해 애정을 요구한다는 건..



5.

앞에서 얘기한 회사 술자리 멤버 중 하나는, 내가 지금의 종교관을 갖기까지는 소시적에 읽었던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말하길, 소설속 주인공 치점 신부가 세속적 기준에서 바라볼 때 "루저"였기에 내가 쉬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 한다. 비루한 성장기를 거쳐 끝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루저"로서 마무리하는 인생이지만, 오히려 "루저"였기 때문에 그 행적과 구도의 과정에서 내가 감동을 받은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게 그의 분석의 요지였다.

더불어 "루저"는 "루저"를 싫어한다는 얘기도 했다.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혐오는 어쩌면 그러한 모습으로 상징되는 계급을 향한, 그리 추락할지 모른다는 공포일 수도 있겠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건 "루저"의 자리에서 안분지족하고 즐기는 모습이 아니라, 미운 오리에서 변신하는 백조의 모습일런지도.
그리고 그보다 깊은 심리의 기저에는 나 자신 스스로를,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하나의 "루저"로, "루저"의 그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6.

요약하면 나는 "루저"의 상태에서 어떤 계기와 매개를 통해 "재능"을 발견하고 이러저러한 노력 끝에 무언가를 "실현"하는 데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고, 그러한 마음 깊은 한 구석에는 나 스스로를 "루저"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화원"에 푹 빠져 지내는 요즘.
과연 나에게 "재능"은 있는지, 왜 어떤 종류의 "재능"에 대해서만 편애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시간을 두고 좀 더 고민해 볼 일이다.







p.s

"바람의 화원" 4회 그네 장면은 너무나도 노골적인 성적 메타포로 가득차 있어서 깜딱 놀랐다는..
"처음이 중요하지요, 언제나."와 같은 정향의 대사나, 그네를 가속하기 위한 몸동작과 얼굴 표정의 교차 편집에서 연상되는 성행위, 마지막 윤복의 절정 고백까지. 므흣.











And




약국에서 주는 '약봉다리'에는 상호와 전화번호, 식전/후.. 등등 외에도
종종 건강에 관한 경구를 넣곤 한다.
예전에 살던 집앞에 있던 단골 약국의 약봉투에 쓰여 있던 건 이런 거였다.

재산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 잃는 것이다.. 라는.

누가 한 말인지도 모르겠고 부러 찾아보고 싶지도 않지만   ... 1
썩 좋은 문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말일텐데,
건강한 사람이라면 구태여 귀담아 듣지도 않을 성 싶고
이미 건강에 탈이 난 사람이 받아들이기엔
참으로 잔인한 선언이 아닌가.

올림픽 시즌이면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 말.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 2
이 말도 마찬가지이다.

신 중심의 중세가 시작되기 전
인간의 육체에 대한 아름다움이 중요한 가치였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경구를
21세기에서 인용하려면 조금 더 사려깊을 필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칫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정신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표현과 다를 바 없을테니 말이다.

몸짱/얼짱에 대한 열광을 비난할 마음까진 없지만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잊지 말아야 하겠다.


p.s 아무래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금메달에만 관심을 갖는 매체들의 만행 때문인 것 같다.







1. 사실은 슬쩍 찾아봤는데, 예로부터.. 로 시작하는 검색결과를 보고 더 찾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새로 알게 된 사실. 나는 "예로부터.."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2. 라틴어로 Anima Sana In Corpore Sano. 아식스는 이 말의 acronym 이라는.


And




1.

일탈이 일탈이기 위해선 먼저 일상이 있어야 한다.

지독한 일상으로 돌아와 무지하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직장 상사는 기술적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도 못하고
그래서 늘 판단과 의사결정이 늦고, 그리하여 그 결과는 엉망인 인적, 시간적 리소스 배분에
죽어나느니 오로지 아랫것들이다.
점점 내 인생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위기감과 절박함.
문제 중 하나는 이런 부조리를 현실로 인정하고 오로지 예스만을 외치는 이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의 경쟁을 강요하는 조직은 그들의 손을 들어줄 것이고,
효율이라는 것을 따지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는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암울한 예감.

스물 언저리의 치기는 내 작은 운동으로부터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큰 뜻을 지탱하였으나
다른 이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욕심이며 만용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스케일을 작게 하여
내가 속한 회사, 조직의 문화를..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던 것 역시
애시당초 내 깜냥엔 어림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성공하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 어쩌면 순전히 운빨인지도 모르겠다.

조직의 리더는 이제 슬슬 나에게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요구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위에 있어왔던 그 무능한 사람들처럼
획일적인 통제방식과 근대초 산업화 시기의 업무강도를 이끌어내길 바라고 있다.

그런 모습에 대한 비판을 공유해왔던 파트원들을 향해
나는 과연 얼만큼의 융통성과 용인의 묘를 발휘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체념하고 기성의 질서를 받아들이는건 아닐까.

..


2.

불쑥..
화양연화를 다시 보았다.

그게..
속물스러움과 위선의 산물이었다면
홍상수의 영화를 봤어야 했겠지만,
그렇다고 내 안의 속물근성을 완강하게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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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 등장하는 이 골목 장면에서 종종 인물과 카메라 사이에 창살이 배치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꽃같은 시기라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아직 오지 않은게 아니라면,
내 경우엔 고등학생 때부터 군입대 전까지의 20대 초반 언저리였음에 틀림없다.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말랑말랑한 머리를 가지고,
닥치는대로 세상에 부딪혀보고 내 운명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아직 사람들에게 정을 쏟아붓는 걸 아까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던,
취중엔 정말 진담만을 토해내고 아직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던 그 시절.

가끔 그 시절을 까닭없이 돌이키거나
아니면 제멋대로 불쑥 떠오르거나 하는 건,
그 무렵에 듣던 노래가 어디서 흘러나올 때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거나 감상에 젖는 건

아마 그 때가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터.

..


3.

내 일탈은 결국 그 시절의 기억을 미처 다 떨쳐내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는 또 다시 일탈을 꿈꿀 것이고
그 기저에는 그 무렵 그 때 가졌던 자유롭고 건강했던 정신을
다시 되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지도.

그래서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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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곧 이 구멍이었던가..


암튼..
가벼운 글을 쓰겠다고 하고선
이런 칙칙한 잡생각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말로는 바쁘다면서 아직 덜 힘든 모양이다.






And




다크 나이트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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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가 죽었단 소식을 지난 1월 산호세 출장 갔을 때 들었더랬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보여준 그 애절한 카우보이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
또 아까운 배우 하나가 갔구나.. 했는데,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난 지금 그 안타까움이 새삼스럽다.

비긴스와 다크 나이트에 이어 놀란 버전의 배트맨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누가 될진 몰라도 조커 역 제안을 받을 배우는 꽤나 고민스러울 터.

영화를 보기 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들로는
순수한 악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했는데,
딱히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극중 조커의 대사를 통해 언듯언듯 비쳐지는 그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
과연 아무런 이유없이 그토록 순전한 악마적 쾌감을 추구하게 되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혼돈(chaos)은 적어도 공평하다고..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쨋든..
개인적으로 무슨무슨 맨 종류의 히어로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때문도 있지만
이번 다크 나이트만큼은 히스 레저의 조커 하나만으로도
다른 코믹스 출신 영화들과 격을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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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scripts
1. 정말 오랜만에 올리는 포스팅
2. 딱히 이유는 없고..
3. 신변잡기적인 내용보단, 뭔가 색다른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싶었던 건데,
4. 본의 아니게 대선과 더불어 정치적 사회적 담론을 자주 지분거렸고
5. 아아 조커여.. why so serious~
6. 심각해질수록 더욱 무기력할수 밖에 없어서..
7. 이젠 좀더 가벼워지려고 함.
8. 두척의 유람선 부분은 좀 그랬음.
9. 대한민국 어디선가 실재했던 일이라면 절대 그런식으로는..
10. 아.. 다시 무거워진다..







And




조삼모사.
야후 백과사전에는 아래와 같이 정리되어 있다.

간교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하는 짓. 중국의 《열자(列子)》<황제편(黃帝編)>에 의하면, 춘추(春秋)시대 송(宋)나라에 원숭이를 좋아하는 저공(狙公)이 원숭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는데,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원숭이들을 향해 <앞으로 너희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씩 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적다고 화를 냈다. 이에 저공은 곧 말을 고쳐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그들이 좋아하였다는 우화(寓話)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현명하고 어리석음에 따라 남을 속일 수 있거나 설복당함을 비유하며, 상대가 알지 못하게 지배하는 잔꾀를 예시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하나는 마땅히 저공(狙公)의 용원술(用猿術)일 테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공에게 농락당하는 이 원숭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쯤되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들에 대한 얘기를 하려 한다는 거.. 대부분 눈치챘을 터.
그렇다.

작년 여름 즈음부터였을까.
종종 보도되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명박의 지지율은 늘 흔들림 없이 탄탄한 과반이었는데 정작 내 주위에 이명박을 지지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해서 현실과 다소 괴리감을 느꼈었더랬다.
어디서 주워들은 글이 있어, 그래 저건 우리나라 여론조사 방식이 후진적이어서 샘플링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라고 나름 해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얄궂게도 대선 결과는 대선 전 여론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 다시 한번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내가 어울리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온통 좌빨인 것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하고 무던한 사람들인데 어찌 내가 체감하는 분위기와 여론조사기관의 발표는 그리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알고보면 원숭이들도 나름 짱구를 굴린 건지도 모르겠다. 저녁보다는 아침에 네개를 받아야 활동이 왕성한 낮시간에 교환, 매매, 대여, 담보 등 모종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자기전에 많이 먹으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명박이라는 이름 옆에 도장을 꾸욱 누른 사람들의 계산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꺼라 믿어서인가, 아니면 747이니 대운하 따위가 뻘짓이며 삽질이라는 거 잘 알지만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일단은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몇다리 거치면 청와대 아무개에 연줄을 댈 수도 있을 터이니 이 참에 한 몫 거하게 챙길 수 있을 꺼란 판단이었을까. 혹시 정말로.. 그가 힘들고 어려운 성장기를 보내서 서민의 마음을 잘 이해할 것이라 생각해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지지하는 이들은 차라리 쉽다. 그들이 지향하는 바와 그 경제적 층위가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분석하고 대응하기가 용이하다.
하지만 개뿔 가진 것도 없고 쥐뿔 떨어지는 것도 없으면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분석하기 난감한데, 이는 그러한 지지행태의 기반이 정책과 소속된 집단의 이익에 있지 아니하고 각 개인별 심리적 동질감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궁핍한 성장기를 거쳤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건, 그러한 주장을 하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크게 싱크될지 모르나 어디가서 대놓고 주장할 수 있는 객관적 논거는 되지 못한다.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CEO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기 때문에 경제를 잘 알고 또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는 월급쟁이 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요컨대 그런 종류의 주장은 소위 개똥철학에 기반한 자신의 느낌이지 다른이를 이해시킬 수 있는 설득력은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명박을 지지하고 나서지 못한다. 간혹 몇몇 있긴 한데, 청년백수 이영민씨의 지지연설이나 거.. 왜 트럭에서 눈물을 훔쳐가며 MB께서 서민을 잘 살게 해 주실꺼라던 그 아줌마의 모습 같은거 보면 감동적이던가?

원숭이도 다같은 원숭이가 아닌 것이고 아침에 네개가 더 좋은 원숭이도 있는 게 당연하고 마땅하다.
문제는 왜 그걸 원하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원숭이이다.

어쩌면 내 주위에서 체감할 수 있었던 대선 분위기와 실제 여론 조사 결과 사이의 간극은..
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왜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정책이 경제를 살린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들이 서민을 위하고 민생을 우선한다고 생각하는지 설명을 못하면서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을 향해 한 표를 던지는 이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목소리를 높여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한다. 그저 조용히 한표를 던질 뿐이다.

왜 대답을 못해. 이 당이 내 당이다, 이 사람이 내 대통령이다, 왜 말을 못해!!

당선 이후 인수위 때부터, 신문 기사 읽는게 너무너무 피곤했다.
그전에는 팰퍼타인 의원이 황제가 되고 공화국이 제국으로 바뀌면서 은둔의 길을 선택한 요다를 이해하기 어려웠었는데, 이제 조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혹자는 이제 대통령이 되고 새 정권이 시작되었으니 비방을 멈추고 국론을 통합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개 풀뜯어먹는 소리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또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리고 그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오긴 했지만, '정'과 '반'을 거쳐 '합'으로 가려면 '반'이 '반'인 줄은 알아야 한다.
도토리를 세개, 네개 세고 있을 때 어떤이들은 나무 그루 채로 챙겨가고 있고, 나중 세대가 어찌되건 말건 나무 밑둥까지 베어 팔아먹을 생각을 하는데, 두 눈 크게 뜨고 그걸 감시하지는 못할 망정 큰 일 하는 사람들이 나무 몇 그루 쯤 해먹는 건 눈감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주절대는 건 범죄다.

조삼모사 이야기의 결말이 달라지려면 원숭이들이 각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저공(狙公) 역할을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뭐.. 지금 원숭이 무시하나연? 이런 식이 되면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이명박과 실용정부의 뻘짓, 실언, 망언, 삽질을 환영하며 독려하는 바이지만, 어쩌면 이 포스팅도 그저 이름없는 한 원숭이의 깩깩거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And




0.

영화 "분노의 역류"에서 진범은 소방 예산이 줄어드는 데 대한 불만을 가진 동료 소방대원이었더랬다.
숭례문 화재 속보를 보다가 잠깐 그런 상상도 해봤다. 부실한 문화재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누군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건 아닐까.

웬걸.. 범인으로 잡힌 70대 노인은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 때문에 그랬다 하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미안하다는, 숭례문은 다시 복원하면 된다는 말을 했다.
아..


1.

숭례문이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상실감과 동시에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던 건, 정작 나 자신이 숭례문에 대해 가진 지식이 전무하다는 사실이었다.
국보1호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 건축물이 국보로 지정될 만한 어떤 의의와 가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외국인에게 숭례문에 대해 관광 가이드를 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내가 가진 지식은 이씨조선왕조의 도읍을 둘러싼 성의 남쪽 문이라는 사실 외에 더 할 얘기가 없는 수준인 것이었다.

불타버린 잔해를 바라보며 드는 안타깝고 처참한 마음과 모순되지만, 사실 화재가 나기 전 그 주위를 숱하게 돌아다닐 때에도 정작 그곳에 있는 것이 문화유산이라는 의식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에둘러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솔직해지자. 별 애착을 느끼지 못했던 게 맞다.


2.

왜 그런가.. 돌아보면 나 스스로는 유교에 대한 개인적 반감과 숭례문이 그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선택한 조선왕조 시기의 상징적 건축물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진단한다.

공자의 유교가 주자에 이르러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조선 땅에서 이룬 학문적 성과, 주리론이니 주기론이니, 사단칠정 따위를 다 이해하고 하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학문으로서, 철학으로서의 유교는 사실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은 하지만, 실생활에서 철학과 사상이 아닌 격식과 예의 형태로 이런저런 부분을 구속하고 강요하는 모습은 완전 질색인데, 특히 조선시대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유교적 관념에서 파생한 불합리한 관습이 휘두르는 폭력을 볼 때 그러했다.

그게 유교의 본질은 아닐 터이나 가장 질색인 것이 "장유유서"다.
나더러 장유유서라는 단어를 새로이 정의하라면, 나이값 못하는 어른이 출생 시기에 의해 자연적으로 획득된 권위를 휘두르며 똥고집을 피우거나 합리적인 의견을 짓밟으며 사욕을 도모하는 것. 이라 하겠다.

나이들어 힘없고 외로운 노인들을 배려하고 돌보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이지 어른이기 때문이 아닌 것이며,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극빈층과 소년소녀가장인 아이들, 장애인을 배려하고 보호해야 하는 이유와 동일한 것이지 단지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장유유서"를 합리화 하는 근거가 어른들의 연륜에서 체득하고 축적된 "지혜"라면, 그런 "지혜"가 없이 그저 나이만 먹은 이들은 어떡할 것인가.

조선왕조는 바로 그 유교라는 사상적 배경이 통치이념자 생활규범이 되었던 시대였지만 과연 지금은 어떤한가.


3.

이념에 따라 붕당으로 나뉘고 관념과 허상에 빠져 격식만 강조하던 보습을 보며 왜 우리 선조들은 좀 더 실질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강산이 수십번 바뀌어 2008년 현재는 철학과 사유는 간데 없고 온통 "실용" 천지다.

불을 지른 이유도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 때문이고, 대운하를 파헤치건 말건 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지도 모르니 좌빨은 뽑아서는 안되는 것이며, 영어 몰입 교육을 해야 하는 것도 그래야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그 "실용"이란 것은 아마도 "물욕"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이념인 모양이다.
너무 관념 속에 허우적거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아무런 철학적 소양 없이 실용을 외치다가는 딱 지금의 모습이 되는 것 같다.


4.

돈이 곧 철학인 이들이 어른 행세를 하려고 하니 당최 이 나라에는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

불을 지른 그 70대 노인은 그 모든 걸 한꺼번에 보여줬다.
토지 보상금을 향한 노욕과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로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그 어른의 지혜, 그리고 다시 지으면 된다는 그 척박한 정신세계..


5.

숭례문이 불타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은, 유교며 조선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과 상관없이 단지 오래된 그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아무리 오래되어봤자 100년 채우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희소가치가 없다.
오래되어 사라졌을 때 많은 이들에게 마땅히 가슴 아프고 슬픈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좀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데 그렇다고 부족한 그게 아마도 돈은 아닐 것이다.





And




0.

국딩 시절이었을까.. 어렸을 때, 그러니까 외제면 무조건 조선 것보다 좋다는 생각이 아직 유효하던 시절에 미국이란 나라의 존재는 나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서 차라리 다른 차원 속에 존재하는 세상같은 느낌이었다. 그 시절 "외제"라는 말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할 때에도 "미제"라는 표현은 그 좋고 훌륭한 정도를 깔끔하게 완결하는 어감을 내포하고 있었고, 주위 친구들 중에, 아버지나 삼촌이 미국에서 사다 주신.. 정도의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엔, 그 물질의 귀함은 둘째치더라도, 그토록 초현실적이었던 나라 미국을 왕래하는 직계가족이나 친인척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로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포쓰를 가질 수 있었던..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미국과 북한이 축구를 하면 어느 쪽을 응원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미국을 응원하겠다고 답하던, 북한을 응원하겠다는 쪽은 한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던.. 그런 시절이었다.


1.

자라면서 미제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그나마 점점 그 미제라는 것도 까보면 메이드 인 차이나.. 로 바뀌어갔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알면 알수록 결코 무관할 수 없는 미국이란 나라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그리고 미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美制라는 뜻보다는 美帝를 먼저 연상하게 되면서.. 어렸을 때 느꼈던 초현실적인 국가 미국은 이제는 더 이상 신비하지도, 무턱대고 동경할 이유도 없는 그런 나라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지구촌 최강의 나라로 군림하고 있는 그 나라의 비결이 무엇인지 실제 모습은 어떠할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더랬다.


2.

어찌어찌하여 회사일로 캘리포니아 산호세 쪽 볼 일이 생겨 지난 한 주 동안 출장을 다녀오게 됐다. 미국은 초행길이었다.

미국에서 몇년 살다 온 것도 아니고, 미합중국의 여러 주를 방방곡곡 누비고 돌아온 것도 아니고,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 근처 언저리를 고작 일주일 다녀오고 나서, 그것도 그 안에서 대단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먹고 자고 회사일보고 관광하다 온 걸 가지고, 미쿡에서는 말이지.. 하며 떠들어 대는 건 가소로운 짓이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서 느낀 감상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제한적이며 편협한 사견일 수 밖에 없지만서도, 그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의 영어 광풍에 대해 한 마디 거들어보려 한다.


3.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나는 내가 미국의 껍데기만 맛보고 왔다는 정도는 알지만, 정작 저치들은 미국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 내에서도 특히 비백인의 비율이 높은 도시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내가 체류하는 동안 마주치고 어떤식으로든 소통해야 했던 이들 역시 백인이 아닌 이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중국계, 일본계, 인도계, 멕시코 언저리 계, 아랍계...
그들은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렌트카 사무실에서, 햄버거집 점원으로, 호텔리어로, 주유소에서, 편의점에서, 업무차 방문하게 된 회사의 엔지니어로, 매니저로.. 미국이라는 나라 곳곳에 자신의 일을 갖고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고유한 액센트와 발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 비록 영어가 짧다 하나 적어도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는 자체를 구별 못할 바 아니다.

TOEIC 700점을 간신히 넘기는 저질 영어를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그 서로 다른 발음과 강세를 갖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오히려 서로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영어에 서툰 이국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로가 보다 간단하고 분명한 표현을 사용했고, 내 발음이 엉성하다 하여 그들이 나에게 총질을 하거나 쌍욕을 퍼부어 대는 일은 있을 리 만무했다.

수많은 오렌지 발음 중에 이경숙 위원장이 믿는 올바른 발음은 WASP의 그것인 모양이고, 그것은 정말 그 발음이 맞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WASP으로 연상하는 미국이 곧 정의이며 지고의 선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치들이 생각하는 미국은 여전히 내 국딩 시절에 생각하던 그 미국에 머물러 있을 꺼라는데 한 만원 쯤 걸 의향이 있다.

미네랄, 오렌지건 오뤤지건 아륀지건 다 알아듣고 소통이 되고 이해를 하는게 그 나라인 것을.
중요한 건 발음이 아니었다.


4.

다른 많은 이들이 미국 땅에서 느낀 걸 얘기할 때 "여유"라는 표현을 쓴다.
처음에는 그게 땅덩어리가 넓어서라고 생각했다. 우리처럼 작은 나라 안에서, 다시 수도권에 빡빡하게 모여 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좁기 때문에, 그렇게 부대끼면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그들에겐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오사카 일대를 여행 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건 땅덩어리의 크고 작음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시 전반에 걸친 여유로움과 뭔가 안정된 그 느낌은 그 사회 구성원들간에 무언가 견고한 믿음이 있지 않고서는 가능할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곳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무언의 Rule을 의식한다.
그 합의란 건 더 오래 체류하며 더 많은 경험을 통해 탐지해봐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겠지만, 일상 생활 곳곳에서 그런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교차로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정말로 차를 세우고 다른이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며, 교통신호나 법규를 정확히 잘 지키는 것이 그네들이 유난히 준법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총을 가지고 있을까봐 두려워서?

그들이 공유하는 최소한의 약속, 그것만 지키면 내가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며 너도 나를 해하지 않을 것을 믿는다는.. 아니, 그 암묵적 합의와 약속에 의해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믿음.. 그 합의가 완전하지 못할 지라도 적어도 공동체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막아줄 수 있다는 신뢰.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동일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자유로운 사고와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함이 마땅한 것처럼, 동시에 그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타인의 생각을 억누르지 않을 최소한의 약속.
굳이 하나의 어휘를 고르자면 "상식" 정도가 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엔 그런 종류의 합의가 있는가. 아니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 적이 있는가.

그네들이라고 왜 사회악이 없을 것이며 부정과 부패, 비리와 비양심, 비상식이 어찌 없으랴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대하는 듯한 어조로 이런 글을 끄적이는 건.. 최근 우리는 경제만 살릴 수 있으면, 내 아파트 가격을 올려줄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무시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범국민적 합의를 확인한 바 있기 때문이다.


5.

영어교육은 분명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고, 또 그리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자면서 오렌지가 아니고 오뤤지가 맞다는 둥의 얘기는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큰 방향을 결정할 자리에서 고민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사교육 시장이 왜 형성되었으며, 공교육이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왜 "교육"과 "경쟁"이 등가의 단어가 되었는지, 그 모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수위는 숙고해 보았을까.
사교육비 지출이 커지는데 대한 문제를 학교에서 영어 발음 좋은 사람들을 교사로 채용하면 해결된다는 생각.
진정 고민해서 내 놓은 답이 저것이라면 역대 최강의 똘추들인 것이고, 뭐가 문제인지 다 알지만 자기네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면, 정녕 그들이 위하는 계층이 적어도 기러기 아빠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라면, 그 계층에 속하지 못하거나 당분간 진입할 가능성이 없는 이들은 이 쯤에서 희망을 접고 각자 살길 찾아 나서야 함이 마땅한 일이다.

뭐 진실이 어느 쪽이건 천박하기 짝이 없는 건 매한가지다.


6.

인수위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보여줬다.
굳이 내가 언급하지 않아도 근 한달 새에 보여준 수많은 뻘짓들은 여러 블로거들에 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지적되어왔다.
나는 그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뜨리는 이슈들을 보며 무섭고 답답하고 때론 화딱지가 치밀고 짜증이 지대로인데, 지지율이 10%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은 모양이다.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 정말 상식이 되기에는 아직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이명박이 잘 살게 해 줄꺼라 믿는 이들이여.
레드 썬-




And




0.

아주 어렸을 때는 내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어떤 방향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사실 그런걸 알아야 할 이유도 없는 거였고.. 단지 주변 이쪽 저쪽에 또래의 친구들이 있을 뿐이었다.

나와 내 또래들이 어느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한 쪽을 향해서 뛰어야 했다.
왜 뛰어야 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채, 그리고 왜 하필 그 쪽으로 뛰어야 되는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뛰어야 했다.

제법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가끔 그런 생각도 했다.
저 놈은 저 앞에서부터 뛰기 시작했으니 덜 힘들겠다.
똑같이 출발했으면 내가 더 잘 뛸 수 있었을텐데..



1.

누가 날 추월하거나, 혹은 내가 멈추어 더 나아가지 않거나 할 때는 막연한, 하지만 극심한 불안을 느꼈고, 돌이켜보건대 군복무 기간 동안, 그리고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복학이 늦어지는 동안 내가 받은 스트레스와 노이로제는 모조리 그런 맥락에 있었다.

그 많은 불안과 초조는 강직성 척추염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라, 진작부터 가지고 있던 그 조바심과 부담감이 강척이라는 병을 불러왔으리라.



2.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돌아본 건 프로작이 내 머릿속에서 일으킨 생화학적 작용도 어느 정도 기능했을 터이지만, 한편으로는 병동 내에서 본 수많은 마이너리티들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가정불화와 부모의 이혼, 학교에서의 집단따돌림 때문에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었던 녀석..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로 고등학교 영어 교사라는 멀쩡한 직업을 갖고도 입원했던 이..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세상에 낙오자로 내던져진 느낌에 자살을 기도했던 아이.. 본드를 끊지 못해, 술을 끊지 못해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환각을 느끼는 학생들과 아저씨.. 대화하다가 상대방을 향해 욕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강박증을 가져 병동 내에서 늘 싸움을 일으키던 이..

뛰고 있는 동안에는 같이 뛰는 주변 사람들 밖에 보질 못 했는데.. 세상에는 그런 뜀박질을 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란 걸 그제서야 새삼스레 느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보며 느낀 제일 먼저의 감정은 참으로 간사하게도 측은지심이기에 앞서 나보다 뒤에 있는 이들이 많이 있구나 하는 일종의 안도감이었음을, 약자에 대한 배려는 그 다음이었음을.. 고백한다.

진작에 뜀박질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고, 아예 뛸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거였고, 다른 어떤 세상에는 뛸 필요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었고.. 아니 그런 생각 이전에.. 왜, 무엇을 위해서 뛰는지에 대해서.. 누가 뛰기를 강요하는지.. 그런 것들을 나 혼자의 힘으로 통찰할만큼 총명하지는 못했었고, 그래서 그런 스트레스와 노이로제 속에 지쳤던 것이고.. 기어이 특수한 환경에 가서야 천천히 곱씹어볼 수 있었던 무렵이었다.



3.

뭐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지만서도,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병을 추스리고, 강척을 다스리고.. 천천히.. 다시 뜀박질을 시작하게 됐다. 천천히. 재발해서 다시 심해졌던 때도 있었지만 MTX 대신 엔브렐이라는 주사제를 쓰면서 강척은 거의 완치되다시피 좋아졌다.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딸 서연이가 태어난지 이제 한달 보름 남짓 된다.
나를, 그리고 집사람을 닮은 아이의 웃고 울고 젖을 물고 자는 모습을 보며 이 이상의 행복이 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4.

때로 뜀박질은 격해져서 나도 모르게 다시 스트레스와 노이로제를 향해 달려가곤 한다.
그럴 땐 주변을 바라보는 시야와 사고의 폭이 다시 좁아지는데, 고과, 연봉, 자동차, 아파트, 해외여행, 펀드.. 그런 것들이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곧 남들만큼 가지지 못한데서 오는 초조함과 상실감인데, 그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질 땐 스스로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걸고 행복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예전 그 심리검사의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고, 입원해 있던 동안 마주쳤던 여러 군상들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천천히 주변을 더 멀리 둘러보고 뒤도 한번 돌아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들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다른 이들과의 비교 우위에 있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지.. 나는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 뛰고 있는지, 혹시 뛰는 이유를 망각한 채 뛰는 그 자체에 파묻히지는 않았는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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