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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티즌'이란 표현.. 이제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
  14. 2007.08.25
    파시즘을 원하는 대중 4
  15. 2007.08.24
    영화 속 보물찾기에 대한 잡생각
  16. 2007.08.24
    진중권 vs 디씨영갤러들 8
  17. 2007.08.18
    학력위조, 앞으로는 없어질까? 2
  18. 2007.08.15
    심형래의 '디 워'는 B급무비인가
  19. 2007.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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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의사는 입원을 권했고, 정신과 병동은 개방병동과 폐쇄병동이 있는데 치료의 효과는 폐쇄병동이 훨씬 좋다 했다.
폐쇄병동은 두개의 철문으로 건물 내 다른 병실과 격리되어 있었고, 식사가 들어오거나 할 때는 바깥쪽 철문을 열고 들어와서 안쪽 철문을 열기 전에 바깥쪽 문부터 잠그고, 안쪽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서 다시 잠그는 식의.. 말 그대로 외부로부터 폐쇄된 공간이었다. 병원 바깥에서도 쉽게 찾을 수가 있었는데, 창문에 쇠창살이 쳐져 있는 층이 바로 그곳이었다.

내가 입원했을 때 먼저 생활하고 있던 그곳의 다른 환자들은 이미 나를 나이롱 환자로 간주하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두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심각한 분열증이나 강박증을 가진 환자도 있었고, 거식증으로 비쩍 마른이도 있었고, 본드를 끊지 못해 들어온 고딩들이나.. 이유는 모르지만 자살기도 후에 들어온 아가씨도 있었고.. 하여간 여러 종류의 환자들이 있었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본인의 의지가 아닌 가족과 보호자의 뜻에 의해 강제로 들어와 있다는 점이었고, 그들 대부분은 나가려는 시도를 하다가 구속복을 입고 독방에 하루이틀 갇힌 뒤에야 포기하고 조용히 지내게 되는 이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그들이 보기에 칫솔이며 슬리퍼에 읽을 책까지 챙겨 제발로 걸어 들어온 나는 뭔가 복잡한 현실을 도피해서 잠시 쉬러 들어온 가짜 환자였던 셈이다.



1.

의사가 나에게 폐쇄병동을 강력추천했던 이유는 나에게서 어떤 종류의 집착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당시 나는 복학을 제 때 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노이로제가 된 상태였고, 더 늦어져서는 안된다는 절박함 때문에 더더욱 현실과의 끈을 놓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정작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로 결심했으면서 어처구니없게도 삐삐를 가지고 들어가서 압수당하기까지 했으니..



2.

입원 초기에 받았던 여러가지 검사들 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검사가 하나 있다.

검사의 이름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종의 심리검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두명의 사람 또는 풍경이 있는 그림을 보여주면서 나보고 그 상황에 맞추어 이야기를 지어내보라는 것이었다.

저 남자랑 저 여자는 원래 여차저차한 관계였는데 지금 저 장면은 이러쿵 저러쿵 해서 어쩌구 저쩌구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대답하고 나면, 검사자는 그 그림을 내리고 그 뒤에 가려져 있던 다른 그림을 보여주고, 나는 다시 새 이야기를 만들어서 답해주고..

몇장의 그림을 설명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앞선 그림의 이야기와 나중 그림의 이야기를 연결해서  스토리가 구성되게 하고 있었다. 이들은 앞에서 봤던 그림 속 그 여자의 부모인데, 어쩌구 저쩌구..

우울증이 심했다면 앞뒤 이야기가 연결되건 말건 심드렁하게 대충 지어내고 말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나는 내 발로 걸어들어간만큼 치료받고자 하는 의지는 있었고, 검사에 최대한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었다. 더욱이 나는 그런 종류의 검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짱구를 굴려볼 여지도 없이 시키는대로 열심히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이야기를 열심히 만들어 내고 있었고..
한 일고여덟장 쯤 했을까.. 검사자가 말하길, "자 , 이제 마지막 그림입니다. 지금까지처럼 그림 속 상황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설명해주세요." 하면서 앞서 설명한 그림을 내리고 마지막 도화지를 보여주었다.

그건 백지였다.



3.

어.. 이거 아무 그림도 없는데요.. 이런 말조차 필요없었다.
검사자였던 그 아가씨도 나에게 백지를 보여줄 뿐 아무런 지시나 요구도 없었고, 둘다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나는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 그림없는 빈 도화지였지만 나는 앞에서 본 그 어떤 그림보다 자세하게 묘사를 하고 있었고, 앞의 그림들에 등장했던 남자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주저리주저리 토해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나였고, 그렇다고 말은 안했어도 검사자도 그걸 알고 있었고, 검사자가 그걸 안다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었다. 검사자 앞에서 실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채 무장해제 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그렇게 그 남자를 통해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
그 남자는 그의 인생을 Reset 하고 싶어했다.



4.

내가 우는 소리가 바깥으로 들렸는지, 출입문에 붙은 작은 유리 사이로 내 우는 모습이 보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른 환자들이 늘 보아오던 정신과 의사 외에 처음보는 다른과 의사가 와서 검사를 하고 간 때문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애시당초 내가 나이롱이든 진짜 환자든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다른 환자들도 나를 완전 쌩나이롱은 아닌 정도까지 인정했고, 몇가지 심리검사가 더 있었고.. 프로작과 몇몇 알약들과 함께 정신과 병동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And




0.

1997년 5월의 어느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거짓말처럼 왼쪽 발목이 디디지도 못할 정도로 새큰거렸다.
전날 술먹고 들어오다 발을 삐끗했겠거니, 또 필름이 끊어졌나, 술 좀 줄이고 이제 건실하게 살아보자..
쉽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오래갔다.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가 류마티스 진단을 받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진이었다.

두달이 채 못돼서 염증은 오른쪽 발목에 이어 양 무릎까지 번졌고, 통증은 점점 심해지는데다 급기야 나 혼자서는 걷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더니, 염증이 골반쪽까지 올라오고 나서는 몸을 뒤집는 것조차 내 의지대로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누운채로 몸을 옆으로 돌려 깡통에 소변을 봐야했고..



1.

K박사가 아직 원장이던 당시.. 예약하면 초진 받기까지 3~4년을 기다려야 한다던 H대학 병원 류마티스 내과를 어찌어찌 연줄을 동원하여 급하게 찾아가서야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나마 초기에 발견해서 아직 관절의 강직이 시작된 것은 아니고, 내 경우엔 병의 증상 자체도 척추 강직보다는 말단 관절의 염증이 더 먼저 나타난 것이라 했다.

퉁퉁 부은 무릎 관절 속으로 바늘을 꽂아 굵은 주사기 여섯개 분량의 염증을 뽑아내고.. 무릎과 발목에 스테로이드를 주사하고.. 알약으로 된 스테로이드와 살라조피린, 그리고 MTX라는 약을 처방받고.. 그렇게 퇴원해서는 하루종일 집안에서 보내는 생활이 시작됐다.

하필 그 때는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가을 학기엔 복학할 예정이었던, 그럴 무렵이었는데, 이놈의 무릎은 조금만 돌아다녀도 염증이 생겨 며칠을 누워서 꼼짝 안하고 지내야 했고, 결국 어떻게든 그 해에 복학하려던 계획은 포기해야 했다.



2.

몸이 아픈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정작 미치고 환장할 노릇은 방구석에 쳐박혀 세상 돌아가는 걸 그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뭔가 분주하게 약속이 많은 스무살의 설레임 언저리에 있는 청춘들은 삐삐와 핸드폰 덕분에 만날 사람도, 만나서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아직 IMF 사태가 닥치지는 않았을 때였던지라 개나 소나 외국으로 나갔다 오는게 유행처럼 되어가고 있었고, 여자 동기들은 사회초년생 특유의 오바스런 직장인 티를 내면서 제법 화장이 능숙해져 가던..

따지고 보면 군생활 내내 시간이 아깝고 그래서 더 초조하고 그랬던 것도, 급변하는 세상이 날 기다려주지 않고 혼자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막막한 느낌 때문이었고, 그래서 제대하고 나서 그걸 따라잡겠다고 학원이며, 아르바이트며..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덤벼들었던건데, 그 모든 계획과 의욕이 틀어지면서 그 때 가진 욕심과 열의만큼, 어쩌면 그 이상 나는 좌절했었더랬다.

불과 1년 늦춰진 것 뿐인데..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르려 한 적도 없지 않았지만 그 다음해에는 멀쩡한 몸으로 복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와 의심으로 고민과 걱정이 더 많았고, 다들 각자의 생활에 바빠 연락이 뜸해지는 친구들을 향한 피해망상과, 길에서 만난 고등학교 친구조차 알아보질 못할 정도로 변해버린 내 외모는 대인기피로 이어졌고,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누적되기를 1년여.



3.

턱관절에 생긴 염증 때문에 공황장애를 겪고 나서
나는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And




강척

강직성 척추염 (Ankylosing spondylitis).
 - ankylose : (관절을) 강직시키다.
 - spondylitis : 척추염. (spondyl- : 척추의~)

골반 바로 위에 위치하는 천골 주변 조직에 염증이 생겨 점차 척추관절 마디가 서로 융화된 상태로 굳는 병. 관절의 강직이 완료되면 천골 근처의 척추뼈가 하나의 통뼈로 굳어 굽히거나 펴지 못하는 상태가 됨.
척추 외에 고관절, 무릎, 발목, 늑골, 어깨, 목 등에도 염증과 통증이 있을 수 있고, 초기 증상은 디스크와 달리 아침과 밤에 관절의 뻣뻣함이 심하고 활동을 하는 동안 점차 통증이 누그러짐.
혈액 검사 시, HLA-B27이라는 백혈구 항원이 있을 경우 이 병을 의심해 볼 수 있으나 HLA-B27 항원이 있다고 해서 모두 발병하는 것은 아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고, 대개 자가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추정. 즉, 왜 이 병에 걸리는지 잘 모른다는 뜻.
스테로이드, 설파살라진, MTX, 레미케이드, 엔브렐 등의 약물로 치료.

환우회
KOAS
KASCO





1997년 5월, 이 병이 나에게 찾아왔다.


And




할  말이 없다.
앞 포스팅에 올렸던 사진 재탕하는 거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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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요즘 자꾸 이 영화의 이 장면이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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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0.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나라에서 어제오늘 있어온게 아닌 비자금 조성과 뇌물공여의 수준을 한차원 끌어올려 청와대를 포함해 3부를 아우르는 경지에 이르게 했으니 얼핏 과한 표현이 아닌 것도 같다.
그냥 그렇다고 인정하고 넘어가기엔 찜찜한 구석이 있어 슬쩍 찾아보니 위키피디아에서는 '공화국'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공화제(共和制, republic)는 공화국의 정치 체제를 가리키며, 형식적으로 또는 실제로 주권이 그 구성원에게 있는 정치 체제이다. 기본적으로 입헌제를 뜻하고, 이에 따라 법을 기반으로 모든 구성원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사회로 운영되는 정치 체제이다. 그러므로 군주제와는 달리 공화제에는 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 」

안다.
공화국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이 나라 안에서 실질적으로 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가리켜 삼성공화국이라 표현한다는거.
하지만 삼성공화국이라 치고, 명색이 공화국인 나라에서.. 선대왕으로부터 현재 치세중인 왕에게로, 그리고 다시 왕세자에게로 조직의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로 귀결되고 대를 이어 세습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공화국은 아니다.

이학수나 김인주같은 이들은 이씨 가문에 충성을 맹서하고 그 집안의 부귀영화와 만세번창을 수호하며 측근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제공받는데 이는 정확하게 주군과 가신의 관계가 그러하다.
가신은 어디까지나 가신이다.
가신이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군주의 자리를 꿈꾸면 그것은 모반이기 때문에 공화정과 다르고, 가신이었던 자가 주군의 험담을 하면 그건 배신인건데 요즘 김용철 변호사를 향한 일부 매체의 시선이 바로 '배신자'를 보는 그것이다.

정확하게는 삼성이씨왕국이 맞겠다.
아무튼 왕국 혹은 제국이면 모를까,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틀렸다.



1.

왕도 왕 나름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카이사르를 통해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던 당시 로마의 환경을 이야기 하는데, 요는 방대해진 로마라는 공동체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에 집정관, 원로원, 민회의 구체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이 할머니는 기본적으로 파워지향적이고 절대권력에 의한 평화를 옹호하기는 하지만 나름 리더에 대한 인물관이 있는데, 특히 푸블리카의 공익을 추구하는 엘리트 지도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뭐 늘 그런 인물이 황제가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문제겠지만..

이 나라가 삼성왕국이고 현재의 왕이 이건희라면, 그는 어떤 지도자인가.
이건희는 대한민국이라는 푸블리카를 위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삼성 혹은 이건희를 다룬 책은 많지만 제대로 분석한 건 드물다. 강준만의 "이건희 시대" 정도가 그나마 좀 멀쩡하달까, 대부분은 삼성의 홍보자료를 받아 베낀게 아닐까 싶은게 대부분이다.
강준만은 "이건희 시대"에서 이건희의 다중적 성품을 언급하는데 그게 좋게 말해 다중적 성품인 거지 바꾸어 말하면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고, 그가 회사의 임직원들을 향해 설파하는 가치와 목표, 그리고 자세가, 이건희 자신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예외여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이나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비자금 조성과 뇌물 등에 대한 최근의 보도를 보면 그를 잠못이루게 하는 것은 삼성이 앞으로 10년후에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자신 이후 이씨 집안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인 것으로 보인다.



2.

그럼에도 언론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삼성을 자랑스러워하고 이건희를 추앙한다.

해외 여행 나간 사람들은 외국에서 만나는 삼성 광고에 뿌듯해 하고, 대학생들은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이건희를 꼽고, 각종 언론들은 삼성이 하는 일에 딴죽을 걸면 이 나라가 위태해진다는 식의 호들갑을 떤다.

비자금 조성이나 금품로비, 에버랜드 전환사채,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금산법 폐지 요구, 무노조 원칙..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보기엔 탈세와 상속과 세습으로 귀결하는데, 그걸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삼성을 옹호하고 여전히 자랑스러워한다.

떡값을 받아먹은 검찰이 눈감고 귀닫는 짓 하는 건 그래 떡고물을 X먹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삼성과 아무런 이해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까지 삼성을 자랑스러워하고 삼성을 걱정하고 삼성을 두둔하는 모양새는 뭔가 이상하다.



3.

어디 삼성뿐이랴.

조중동은 아직도 구독률 Top3이고,
남들이 많이 보는 신문이면 문제없는 거라 생각하는지..
조선일보를 대한민국 정론지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의 목소리로 노무현이 빨갱이라 하면 참여정부는 좌파정권이 되고,
북에 퍼주는 햇볕정책이란 것 때문에 세금 내는 걸 아까와 하고,
모든게 노무현 때문이고,
그쪽 사람들이 잃어버렸을지 모를 10년이 나한테도 그런 양 함께 분개한다.
박정희 덕분에 이만큼 먹고 산다느니,
그 때가 좋았다는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밥그룻을 잃고 농성 중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뉴스를 보면서
싹 쓸어다 쳐 넣어야 된다고 무심히 내뱉는 이도 있다.
일해공원이라는 간판을 달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는 무리도 있다.
친일 청산을 하자는 목소리에 왜 이제와서 다 지난 일을 끄집어 내냐고 짜증내던 이도 있고,
아직도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휘날리며 미국을 위해 기도하고,
그 큰 교회를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계획이 뻔한데
그걸 보도한 방송국을 점거하고 시청 거부를 하기도 한다.
외국에서 돈을 벌어올 수 있으면 논문 조작을 해도 눈감아줘야 한다고 하고
영화가 허접해도 닥치고 지지해줘야 한다고 한다.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벗겨도 끝없이 비리가 샘솟는 사람을 살인을 했대도 찍겠다는 사람이 있고,
명색이 검찰이라는 것들이 날림으로 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믿으라고 한다.



4.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의 문제는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 하여 무조건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 그것은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가 그 자신 스스로 생각하기에 합당한 근거를 주장할 때의 일이다.
상식과 논리를 무시하고 응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아니 내가 이들과 소통을 계속 해야 할 지 암담해진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그러니까 옳고 그른 것과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게 핵심인 것 같다. 이는 이 땅의 근현대사와 무관하지 않을텐데 친일 부역자들이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득세했던 사실이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 등이 고루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김용철 변호가가 폭로한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배신자 논리의 목소리가 더 크다는 것은, 패거리의 이익이 그 패거리가 소속된 이 나라 국민이 수호해야 할 공화적 가치보다 중요하다는 뜻일터.

결국 이 시대 이땅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건 권력의 분산이 아니라 한곳으로 집중하는 것인 모양인데, 그게 총칼의 힘이든 돈지랄의 힘이든 하여간 권력이 한 군데로 집중되고 거기에 기생해서 내 한몫 챙길 틈을 모색하자는게,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자유롭게 경쟁하되 내 목적을 위해 남을 해하지는 말자는 원칙에 우선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길이 없다.

이 나라의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잘못 꼬인 걸까.



0.

다시 삼성공화국으로 돌아와서..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은 물신만능공화국과 정의무시공화국의 의미를 포괄한다.
비약하자면 금덩어리 앞에 서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자유, 평등, 정의.. 이런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는 모습 아닐까.
별개의 사안 같아 보여도 부동의 지지율 1위를 고수하는 이명박을 향한 사람들의 기대 역시 딱 그런 맥락 아니겠는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그 주권을 포기하는 것도 국민의 의지와 선택으로 봐야 할까.




So this is how democracy ends, with thunderous applause.
 -  Padme Amidala, Star Wars EpisodeIII : Revenge of the Sith











And




벗겨도 벗겨도 끝모를 비리의혹 때문에 "양파명박"이니 "다마네기 리"라는 별칭까지 생기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굵직굵직한 부정부패의혹 말고도 그의 발목을 붙잡는 사소한 문제들이 몇가지 있으니 그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맞춤법 문제다.

이외수 본좌의 지적이나 모기불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그 중에서도 한결같은 곤조를 자랑하는 것이 바로 문제의 "읍니다"이다.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언급한 대로 앞음절의 종성에 따라 "읍니다/습니다"로 구별하던 것이 "습니다"로 통일된 건 1988년의 한글 맞춤법 개정에 따른 것이다.
표준어 규정 (문교부 고시 88-2호) 에 따르면 제17항에서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하며 "습니다"를 취하고 "읍니다"를 버릴 것을 포함하고 있다.

위키에 나와 있는 이명박의 프로필을 보면 1988년에 이명박의 직위는 현대건설의 회장이었다.
관련하여, 왜 그는 아직까지 "읍니다"를 쓰고 있는지 내멋대로의 상상을 주절대본다.


1. 한글 맞춤법 틀릴 수도 있다.

누구나 국어를 100점 맞아야 하는 건 아니고 또 그럴 수도 없는 것처럼 한글 좀 표준어 규정에 어긋나게 쓴다고 해서 누가 죽거나 다치지 않는 이상 잘못은 아니다. 당장 이 포스트만 털어도 잘못 쓰인 부분이 적지 않을 터이니..


2. 변경된지 20년이 다 되도록 모른다는 건 좀 그렇다.

분명 1988년 이후로 출판된 거의 모든 활자화된 인쇄물에는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읍니다"를 쓴다는 것은.. 이후 20년 가까이 주욱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뀐 종결어미를 사용하는 문장을 읽어보질 못했거나, 보고서도 출판사 교정부에서 놓친 오자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보았지만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봤는데 모른다는 건 그냥 센스가 좀 떨어지거나 고집이 센 모양이다 하고 넘어갈 일이지만, 아예 뭘 읽질 않아서 그런 거라면 심각한데, 이 경우에 이명박의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틀은 1988년 이전에 완성되어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출판물은 그렇다고 쳐도 적어도 거느리고 있던 임직원들로부터 보고받는, 또는 상신받은 결재 문서에는 "읍니다/습니다"가 전혀 없었을까. 아니면 마찬가지로 보고도 뭔가 다르다는 걸 몰랐던 것일까.


3. 주변 사람들은 뭐했나

20년간 이명박 주위의 사람들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읍니다"를 쓰고 있는 걸 볼 때, 좀 비약해서 말하면 이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읍니다/습니다"에 대한 지적이 여지껏 없었다는 말도 될지 모른다.
추려보면 대충 세가지 경우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이 똑같이 모르거나, 알지만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그런 걸 피드백할 수 없는 분위기이거나..
다같이 모른 경우라면 주위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변변치 못한 그만그만한 사람들인 거라 생각하면 되고, 두번째 경우라면 측근들이 기회주의자이거나 복지부동 내지 보신주의를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거라 보면 되겠다. 뭐 가만 보면 이런 사람들의 처신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처세의 표본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고..
그런 지적이 아예 있을 수 없는 극악의 경우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주위 사람들이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뀐 걸 알면서도 이명박에게 보내는 메일이나 서류에는 "읍니다"로 쓴다거나, "회장님, 맞춤법 틀리셨어요."라는 신입사원의 메일을 임의로 삭제한다거나, 얘기했는데 재떨이가 날아왔다거나.. 이렇게 되면 이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본인이 의도했건 혹은 의도하지 않았건 그가 지금까지 몸담아왔거나 이끌어온 조직의 분위기가 그런 것이었다면, 조직의 수장에 대한 권위가 그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일체의 피드백을 용납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었다면.. 대운하 공사에 대한 측근의 보고가 과연 어떠했겠는가.


4. 언제쯤, 어떻게 알게 될까

"읍니다/습니다" 관련해서 이미 넷 상에서는 어지간한 이들은 다 알고 있을 터인데.. 과연 이명박은 주류 언론이나 매체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하지만 블로고스피어에서는 이미 여러 블로거들이 언급한 이 일을 언제쯤 알게 될까.
혹 그가 정말 대통령이 돼서 신년휘호나 친필싸인 뭐 그런 것에 "대운하, 반듯이 성공시키겠읍니다." 같은 걸 쓴다면 그 때쯤 조중동은 "국론 분열 조장하는 좌파 빨갱이들, 맞춤법에 트집잡아" 같은 기사를 내보내지 않을까.


...


앞선 다른 포스트에서 언급한 그 부서장이 딱 이랬다. "읍니다"였다.
사원들끼리의 뒷담화는 종종 그 부분을 논하며 타부서 보기 창피하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 그냥 무시하자 등, 의견이 분분했는데, 결국 그 방울은 다른 어떤 사정으로 퇴사를 결심한 모 사원이 환송회식 자리에서 고별사 중에 포함하는 식으로 달았고, 그 부서장은 지금 "습니다"로 쓰고 있다.


이명박 때문에 떠오른, 어쩌면 별 거 아니었을지도 모를, 그 기억이 새롭다.




And




지금은 상무가 된, 몇달전까지 내가 속한 부서의 부서장이었던 모 부장은 업무 외적인 면에서의 상식 수준이라든가 평소의 술버릇, 인간성 등에서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업무추진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카리스마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리소스를 남김없이 모조리 사용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스타크래프트에 비유하자면 SCV를 가지고 자원도 채취하고 정탐도 보내고 급할 땐 전투까지 시키는 유형으로, 그 자신이 콘트롤할 수 있는 유닛들 중 단 한마리라도 말년 병장처럼 짱박혀 빈둥거리고 있는 꼴을 용인하지 못할 뿐더러, 에너지가 한칸 남아 힐링 내지 리페어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야 이 녀석이 일 좀 했구나.. 하고 인정하는 상사였다.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사원 시절부터 자기는 그런식으로 일을 했고 상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며, 당시 자신의 부서장이었던, 지금은 다른 사업부의 사업부장으로 전배인사된, 모 전무가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롤 모델이었음을 공공연히 강조하곤 했는데, 그 사람 역시 아랫사람들을 닥달하고 부리는데 가차없기로 유명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생산한 어떤 제품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결함으로 인해 시장에 나가 문제가 생겼다면, 관련 부서가 모여 이에 대한 개선책을 찾고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방식일 터이나, 그의 스타일은 작은 일이라도 먼저 임원선까지 과장섞인 보고를 해서 이슈의 심각성을 부풀리고, 귀책부서의 실수를 부각시키고, 마땅히 그 경우에 대응해야 할 부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먼저 솔루션을 내놓는 식이었다.

이에 대해 그의 조직에 소속된 부하직원이 갖는 불만은, 우선 사안의 심각성을 부풀리는 바람에 평온한 날 없이 일년내내 비상상황이라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다른 부서에서도 기회만 되면 우리 부서의 실수를 찾으려 들더라는 점, 부서간에 협력이 점점 어려워지고 다들 무사안일, 복지부동을 추구하게 되며, 다른 부서에서 할 일까지 감당하려다 보니 여유있게 생각해볼 일을 잔업과 야근으로 피곤에 쩔어 하게 된다는데 있었다. 요약하자면 그의 스타일 내지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부서와 비교해서 업무가 너무 과중해진다는 것이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하나는 그런식의 일하는 방식이 회사와 조직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식의 업무스타일을 계속 고수했고 회사는 그를 조직장악력과 업무추진력을 겸비하고 회사에 헌신하는 재원으로 평가했으며,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런 식의 성공사례가 늘어갈수록 자기방식에 대한 확신이 더 견고해지겠구나.. 하며 답답해하곤 했다. 분위기 좋을 땐 이런저런 불만들을 빙빙 돌려서 농담을 가장하여 찔러보기도 하고, 술이 떡이 돼서 다들 제정신이 아닐 때 미친척하고 직설적으로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신념은 확고했다. 아니, 확고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그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부하직원들이 먼저 불만과 고충을 하소연할때의 대답은 그렇다 쳐도,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그 자신이 먼저 답답해하며 사뭇 진지하게 부하직원들에게 문제와 방법을 물을 때에도, 그는 진정으로 그 자신의 스타일 외에 다른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업무처리 방식으로 윗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마다 그 방식에 대한 확신을 더했던게 아니라, 보고 배운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고, 다른 새로운 방법을 시험해보기엔 그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방식이 있더라도 결국 가장 믿을 수있는, 가장 리스크가 적은 방식을 선택했을 뿐일지도..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결국은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험으로 얻은 어떤 가치판단의 기준이, 경험 외적인 것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유연한 사고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건 딱 거기까지만의 발전을 허용하는 독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삼라만상을 모두 경험할 수도 없는 일이고, 살면서 직접 체험하여 익힐 수 있는게 얼마나 되겠으랴만은 어린 시절의 체험으로 사고방식이 굳어버리는 경우는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직접적인 체험에 의해 축적된 데이타로부터 주변 인물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행동양식 중에 "선입견"이 있다. 말끔한 외모에 정장 차림이면 큰 고생없이 자라 펜대 굴리는 일을 하고 있을꺼라 생각한다거나, 소매자락 사이로 팔뚝에 슬쩍 문신이라도 보이면 소싯적에 좀 놀았거나 건달 생활을 하나보다.. 하는 그런 생각들. 선입견이 유용한 것은 찰나의 시간에 빠른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음으로써 불확실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선입견의 효용은 딱 거기까지이다. 그 이후에 추가되는 직간접적 데이터에 의해 처음 내려졌던 평가는 수정될 수도 있다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경험에 발목을 붙잡힌 채 선입견과 편견으로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하려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나이드신 분들이 6.25라는 비극과 전후의 반공이데올로기를 체험하여 빨갱이에 대해 갖는 레드 컴플렉스와 그들의 트라우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시대와 사상의 변화를 수용하고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명박이 대운하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그가 직접 체험한 불도저와 콘크리트의 경제가, 그보단 덜 직접적으로 경험했을 환경 문제와 고도성장기 이후의 변화된 경제 흐름에 우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동영이 그 어떤 철학 내지 정견 없이 조직관리와 자기편만들기에만 전념해온 것도 지난 대선에서 노사모라는 조직으로부터 시작된 센세이션을 직접 체험했던 바가 컸을 터이고, 그 이상을 내다보지 못하고 계속 거기 천착하는 이상 아무런 가능성도 발견할 수 없는 정치꾼일 뿐이라 생각한다.
심형래가 그렇게 CG를 강조했던 건 아마 남기남 감독으로부터 전수받은 영화철학에 쥬라기공원이 보여준 CG에 경악했던 기억이 버무려진 탓이 아닐까. 그가 그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어 기본적인 영화 문법을 익히고 단지 돈벌이로서의 영화가 아닌 무언가 표현하기 위한 예술로서의 창작물을 만들길 바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이 글엔 내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들이 어떻게, 얼마나 작용하고 있을까.
혹 나 자신이 어떤 결론을 미리 내리고 온갖 궤변을 동원해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항시 주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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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군대의 기억은 어지간해서는 다시 꺼내고 싶지도 않고 어디가서 자랑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종류의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불쑥불쑥 떠오르는 단상이 있는 건 외려 내 의지와 무관하게 깊이 새겨져 있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며 그로인해 내 글은 종종 군시절 에피소드로부터 시작하곤 한다.

자대배치를 받던날, 나와 내 동기가 소속될 소대는 세 내무실에 걸쳐 나누어져 있었고 우리 둘은 각각 그 중 한 곳으로 더플백을 풀게 되어 있었다. 동기녀석이 배치받은 3내무실과 내가 생활하게 될 2내무실의 분위기가 전 중대를 통털어 양 극단에 위치한다는 걸 알게 된건 자대배치를 받고 오래지 않아서였다. 다행히도 내가 있는 곳이 양지였다. 동기놈의 3내무실은 중대 내에서도 내무실 군기가 가장 센 곳으로 통하는 곳이었고, 일체의 웃음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구타와 얼차려가 있었다. 반면 내가 속한 곳은 벽하나를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로 화기애애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작업 중에나 훈련장에서나 식당에서 선임병들 몰래 서로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이등병에게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나는 2내무실에 배치된 것이 마냥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남들 다 겪는 그런 이등병 생활을 크게 다르지 않게 보내고.. 어떤 고참들에게는 갈굼도 받고, 어떤 고참들과는 장난도 치고, 시간이 지나 후임병도 생기고 군생활의 요령도 늘고 짬이 차고 어느덧 분대장이 되었다. 어느 군바리가 그리 느끼지 않겠으랴마는, 짬이 좀 된 뒤에 바라보는 부대 내 군기강은 땅에 떨어지다 못해 아예 지구 반대편으로 뚫고 나가려는 기세였고, 정말 군기가 빠져서 그랬던것일까.. 부대에는 늘 이런저런 사고가 그치질 않았다. 2내무실을 제외한 여섯 내무실 전부가 미귀 내지 탈영 등의 이력을 가진 관심사병을 하나씩 보유하게 되었고, 여전히 분위기 좋은 2내무실은 그런 훈훈함과 무사고 이력을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하고 그게 다시 밝은 분위기로 피드백하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었다.

그 즈음 모두가 예의주시하고 있던 녀석은 변심한 애인 문제로 공중전화를 붙잡고 살기 시작한 3내무실의 한 후임병이었다. 다들 이 녀석이 언제 사고를 터뜨리려나 불안해하고 있을 무렵.. 기어이 휴가를 나갔다가 미귀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헌병들 손에 잡혀들어오고.. 며칠동안인가 군기교육대를 다녀왔다. 그 동안 부대 분위기라고 좋을리 없어 전 중대원이 군장을 꾸려 연병장을 돌며 연대책임의 속죄행위를 하고 영창에서 돌아온 그 녀석이 잔뜩 풀죽은 채 고참들의 갈굼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 어느날, 중대장이 내린 나름 특단의 조치가.. 이 녀석을 2내무실로 옮기라는 명령이었다.

우리 내무반원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적어도 내무실 차원에서는 구타없는 밝은 분위기와 무사고 전통에 빛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에, 사고 이력과 가능성을 지닌 멤버를 받아들이기가 다들 너무 억울했던 것이다. 군기교육대에서 어떤 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은 사고를 저지르기 전에 비해 무척이나 기가 꺾여 있었고 그래서 어쩌면 더 불안해보였고 그런 그를 분대원들은 다정하게 보듬지도 못하고 대놓고 갈구지도 못한 채 냉랭하게 대할 뿐이었다.

나 역시 유쾌할 리 없었다. 전역까지 이제 불과 두달 남짓인데.. 행여 이 놈이 또 무슨 사고를 쳐서 내 뒷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아.. 왜 말년에 이런 시련이 찾아오나..
일석점호를 앞두고 다들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을 무렵, 그 녀석을 데리고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뽑아 막사 뒤 체력단련장으로 갔다. 담배를 한대 물려주고, 나도 하나 피워 물면서.. 하루종일 궁리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내용이.. "내가 이등병일 때 어떤 놈이 축구하다가 장파열로 죽었다."로 시작해서, "어떤 놈은 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었는데 죽지는 않고 어찌어찌됐다, 일병 때 어떤 놈이 소원수리를 써서 다들 개고생을 했는데.. 상병 때 어떤 놈이 사격장에서 자살을 했는데.." 등등 하다가 "이런저런 힘든 순간들을 버텨내고 지금 이 자리까지 잘 생활해 온 나 스스로가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나중에 너도 지금 내 위치에 섰을 때, 내가 느끼는 이 뿌듯함과 설레임을 너도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식이었다.

마지막 대사를 마칠 즈음.. 이 녀석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쓴 나도 놀랄 정도로 효과가 좋았더랬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감정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사고 안치고 잘 하겠다고, 믿어달라는 흐느낌과 자기고백으로 이어지더니, 그후 녀석은 다시 중대의 일원이 되어 정말 내가 전역하는 날까지 2내무실의 무사고 신화를 이어갔다. 전역 후에 만난 다른 후임병 말로도 잘 지내고 있더라 했다.

...
...
복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직장에서 종종 그 때 그 기억을 떠올린다.

아직 뭘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신입사원들을 볼 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일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 잘 가르쳐주지 않는 선배 사원을 보며 원망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볼 때, 밖에 나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귀중한 비법이라도 전수받는 양 귀담아 듣는 모습을 볼 때.. 맞아 나도 저 때는 저랬는데.. 어차피 조직에 적응하고 나면 이 조직의 썩은 곳과 문제점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을.. 그 땐 왜 그렇게 빨리 조직의 일원이 되지 못해 불안해했을까.. 늘 조직의 문제점에 대해 뒷담화를 하면서 왜 난 이 조직을 여태 떠나지 못하고 있을까..

그 때 그 녀석에겐 군대라는 조직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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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소동은 나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황우석'이나 '된장녀'같은 맛깔난 떡밥이 아직 따끈따끈하던 무렵에도 차마 용기내지 못했던,
내 블로그 개설을 실천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 '디워'가 미국에서 개봉을 했고, 현지 평론가들에게 다구리를 당하고 있다.
자, 지난 뜨거웠던 '디워' 소동을 대중을 무시하는 평론가들에 대한 반발이라고 해석했던 사람들..
이제 미쿡 평론가들에게도 뭐라 얘기 좀 해야 하는거 아닌가.
대충 눈팅해봐도 그들의 현란한 어휘와 수사는 국내 평론가들의 그것에 비해 분명 한층 더 거칠고 직설적인데, '디워'의 흥행이 잘난 척하는 평론가들에 대한 반감이라는 논리대로라면 이건 뭐 미쿡 평론가들께서 대한민국 대중을 아주 쥐벼룩만도 못한 개차반으로 무시하는 것이니 지난달에 보여준 그 가공할 전투력으로 어여 미합중국 본토 상륙을 해야 하는거 아니냔 말이다.

기어이 '디워' 덕분에 대부분의 평에서는 '코리아'가 딸려들어가 함께 무시당하고 있다.
아프간 피랍 사건 때는 그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체면이 깎이고 향후 해외에 체류하거나 여행할 한국인의 안전이 위험해진다며 생난리를 치던 사람들이 '디워' 때문에 나라 이미지가 함께 까이고 있는 건 왜 모른척하는가.
설마 진짜 뭐가 뭔지 상황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닐테지.

허긴 그네들은 '평'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의 흥행스코어에 따라 잘되면 "것봐라 미국인도 인정한 훌륭한 영화 아니냐" 할 것이고, 처절하게 실패를 해야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거야" 하며 그제서야 답답한 짱구를 굴릴테니.
왜 국내 평론가들의 평에 의해 그 예술적 성취의 정도가 가늠되어지지 못하고 굳이 외국인의 입으로 최종 선고를 받아야 하는지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애시당초 심사장은 영화를 예술이 아닌 산업으로 접근했고, 그 사업의 성공을 위해 비열하게도 다른 예술인들과 그들의 작업물을 멋대로 깎아내렸다.
그리고 어떤 평론가들과 블로거들은 '디워'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 '후졌다'라는 평을 했다.
다른 어떤이들은 그 둘을 묘하게 섞어 심감독이 얼마나 고생해서 만든 영환데, 수백만 관객이 본 영화가 왜 후졌냐고 항변하며 패악질을 했다.
그 와중에 사업에 관여한 어떤 이들은 충무로라는 정체불명의 집단과 평론가들, 그리고 이에 대치하는 대중.. 이런 대립구도를 조장하기도 한 것 같다.

나는 그 무지가 두렵다.
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내던진채 돈을 향한 집착을 숨기지 않는 그 뻔뻔함이 두렵고, 본질을 흐리고 여론을 왜곡시킬 수 있는 그 거대한 세력과 계략이 무섭다. 아무런 의심없이 쉽게 낚이는 그 무지함이 안스럽고, "내가 재미있다는데 니들이 뭔 상관이냐"며 "무시하지 말라" 되려 큰소리치는 그 꼬라지가 혐오스럽다.

세상은 쉽게 이분하여 생각해선 안되지만 적어도 이 경우에 대해서 나는 '디까'이며 '심까'라고 단언해도 되겠다.





세줄요약
1. 오늘은 한줄이다. 나는 디워가 부끄럽다.

And




군 복무 중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영외 야산 보행로를 정비하느라 삽자루를 들고 무성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을 쳐내다가 그만 팔뚝에 조그만 가시 하나가 박혔다. 상처를 이리저리 눌러보아도 나올 기미가 안보이더니 조금씩 부어오르면서 아예 살 속에 파묻힌 상태로 딱지가 앉아버렸다. 딱히 아픈 건 아니면서도 살 속에 뭔가 들어있다는 찝찝함이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었다.
포기한 상태로 며칠이 지나서야 상처는 노랗게 곪아 터지더니 기어이 그 나뭇조각을 토해냈다.

불쑥 그 기억이 떠오른건..

범여권이라는 집단에서 진보와 개혁을 사칭하는 어설픈 이로 인해 몇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한나라당이 집권하여 이 나라에 곪을 곳은 빨리 곪아 터뜨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하여..
대북지원을 중단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경색시키고, 북한 내부의 불만을 증폭시켜 군부 쿠테타와 김정일의 실각을 유도하고 북한이 다시 대포동을 태평양 너머로 날리고 지하핵실험하는 걸 봐야 한다.
이 나라에서 복지니 분배니 운운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더 떠들지 못하게 해야 하고,
국가 보안법을 강화해 빨간 블로거들을 이적행위로 잡아넣어야 하며,
부동산 정책도 다 원점으로 돌려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믿는 이들에게 막차를 탈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
빈민들과 노숙자들은 삼청교육대와 같은 시설을 만들어 도와줘야 하고,
운하 공사를 정말로 시작해서 이 나라의 하천이 썩어 들어가고 생태계가 파괴되어야 한다.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사과상자와 차떼기를 부활시키고,
진정한 권력형 비리가 어떤 것인지 웅대한 스케일로 함 보여줘야 한다.
나아가 이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 미국에 봉헌하여
해마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수백명씩 납치되어도 CIA와 U.S.Army가 있다는 든든함을 갖게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되고, 촛불시위를 하고, 열우당에 힘을 실어주고, 과반수의 의회가 만들어지던 무렵에 내가 기대했던 건 지금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 사회 여러부분의 기득권과 권위가 어느정도 해체된 건 인정하지만,
파병, 대북특검수용, 국보법, 사학법, FTA 등등.. 정책적으로는 한나라당이 집권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준 아닌가.

나는 이 나라에서 나고 자라 생활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이 나라가 더욱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길 희망한다.
가난하거나 병약해도, 못배워 학식이 짧거나 외모와 취향이 남달라도 차별받지 않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똘레랑스가 상식이 될 정도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길 원한다.
후손들에게 더 평화롭고 안전한 사회와 맑은 공기, 푸른 강산을 물려주기 위해 긴 안목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많이 벌어 사회에 많이 환원하고, 그런 부자가 존경받는 곳이 되면 좋겠다.
말도 안되는 노동을 강요받는 고용환경이 개선되었으면 좋겠고,
가진게 없어도 배움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고,
모든 개인이 자아실현을 위해 살아가기가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쩌면..
상처를 빨리 곪게 만들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세줄요약
1. 상처가 빨리 곪아 터져야 새 살이 빨리 돋는다.
2. 안그러면 좋겠는데..
3. 어쩌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And




타인의 취향

전적으로 뒷북을 둥둥 울리는 글이라 판단되고,
이미 여러 블로거들이 반박 또는 옹호하는 글을 올렸지만,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댓북을 울린다.

링크한 김규항의 글은 전체적으로 이번 사건의 추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진정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관심있게 지켜봐왔다면 '선빵'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태연자약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쓰면서 평론가들을 가리켜 '제 취향을 경멸하는 재수 없는 인간들'이라 싸잡아 표현하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건가.
내가 평론가였으면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 일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번 사건 최대의 피해자는 그간 양질의 글을 써온 여러 평론가들이 아닐까 싶다.

특히 색깔입힌 아래 문장이 어떤 근거로 쓰여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 대중들은 잘난 그들에게 반감을 갖게 되었고 그 반감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는데(전문가들이 호평하는 영화는 부러 피하는) 결국 <디워>에서 폭발한 것이다. ... >

김규항은 평단의 반응과 관객의 선택 기준 사이에 어떤 함수 관계를 발견한 모양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훌륭한 논문꺼리 아닌가.

김규항의 인격을 폄훼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번 글만큼은 생각이 짧았다고 본다.





세줄요약
1. 타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2. 평론가들이 선빵을 날렸다는데는 동의할 수 없다.
3. 뒷북을 울리며 삽질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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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Network와 Citizen의 합성어. 오프라인에서만 활동하는 사람과 구분하여 '넷(Net)'을 통한 소통이 가능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 정도로 해석하면 큰 무리는 없을 듯 싶다.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일정 부분 '네티즌'이라는 집단 내지 부류의 공통적 정서가 존재했을 수 있겠으나(예컨대, 초기 PC통신 시절), 오늘날 온라인에 접속하여 이런저런 표현이 가능한 사람들의 규모가 과연 '네티즌'이라는 말로 대표하여 나타낼 수 있는 수준인가.. 에 대해서는 긍정하기 어렵다.

'네티즌'은 어쩌구 저쩌구.. 하는 표현에서 '네티즌'을 '국민' 혹은 '시민' 등으로 치환했을 때 그 의미는 물론 달라지지만, '네티즌'이라는 대상 자체가 '국민'이나 '시민' 등으로 지칭하는 것만큼의 광범위하고 모호한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어제오늘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어서 근래의 기사들을 보면 '일부 네티즌'이라는 식으로 한정하여 인용의 출처를 삼고 있으나, 이런 식의 표현조차도 위험한 것은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사실 왜곡과 여론 호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책상에 앉아 인터넷 이곳저곳을 눈팅하며 기사꺼리를 찾는 찌라시 기자들에게는 모든 기사의 출처가 소위 '네티즌 반응'이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 이택순 경찰청장이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 자신의 퇴진을 요구한 경찰 간부에 대해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자 경찰관과 네티즌 등이 일제히 반발, 그 결과가 주목된다. ... >

< MBC '무한도전'에 대한 네티즌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불거져 나왔다. 25일 '무한도전'은 지난주에 이어 '서울구경 선착순 한 명' 2부를... >

< ... '커피프린스1호점'은 27일 내용상으로는 마지막회인 '커피프린스1호점 17회'를 남겨두고 윤은혜가 예쁜 여인의 모습으로 거듭날지 네티즌들의 궁금증이 대단하다. >

< ... 또 최근의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K씨, L씨 등이 공교롭게도 모두 개그맨 출신이라는 점에서 네티즌들은 개그맨들이 왜 성폭행에 잇따라 연루되는지 궁금해 하면서 이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 >

여기서 '네티즌'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지 감이 오는가.
Network에 접속 가능한 이들 중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상상이 되는가.

아래의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네티즌'이라는 단어가 어떤식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 ... ‘디워’를 TV 생방송 토론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던 386세대 평론가 진중권을 향해 ‘안티 진중권’ 운동을 주도하는 네티즌들은 대부분 포스트 386이다. ... >

기사 전문을 읽어봐도 무슨 근거로 저런 결론이 가능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얼마전 있었던 '진중권 vs 누리꾼 맞장토론' 역시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추출된 몇몇 패널을 마치 전체 넷(Net) 사용자를 대변하는 양 토론의 제호를 달았다. 심지어 그렇게 모인 패널 사이에서도 아젠다에 대한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사족. 개인적으로, '누리꾼'이라는 표현은 지나가는 개나 줘버렸으면 좋겠다.)

요컨대, 그 모집단인 이른바 '네티즌'이 더 이상 단일화할 수 없는, 다양한 군상이 모인 규모가 되었으므로, 그중 어느 한쪽의 말을 인용하며 '네티즌' 운운하는 것은 이제 옳지 않다는 뜻이다.

이제는 기사에서 '네티즌'이라는 불분명한 표현 대신, 어떤 출처와 근거에 의한 것인지를 보다 상세하고 명확하게 기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세줄요약
1. 네티즌은 무지 많고, 많아진만큼 다원화되었고 획일적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2. 아무데나 네티즌을 갖다 붙이면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3. 그러니 이제는 다른 더 정확한 표현을 찾자.


And




소위 '빠'를 거느릴 수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황우석이나 심형래는 내 기준에서는 도저히 심취할 수 없는 사람들인데, 도대체 왜 그토록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 있는지 그게 계속 궁금했었더랬다.
황박 사태 이후 제일 만만한 썰이 인지부조화 이론이 되어놔서 많은 이들이 이를 들먹이곤 하지만 어떤 블로거의 포스팅에 따르면, 인지부조화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행위의 저질러짐, 소위 커미트먼트(commitment)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심형래의 '디워'에 대해서는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 가능한 경우가 훨씬 더 적을 것이다. 영화 보는데 들어간 돈 몇천원을 커미트먼트로 보기엔 좀 멋적지 아니한가.

가정을 뒤집어 보았다.
어느 출중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있어 그 능력으로 '빠'를 동원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선동가 역할의 인물을 필요로 하는 일단의 잠재적 무리가 먼저 존재하여 어떤 인물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차라리 이게 말이 되는 것 같다. 심형래는 그의 의지로 '심빠'와 '디빠'를 양산한 게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군중들에 의해 간택되었다고 해석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조직화되었거나 실체가 뚜렷한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비슷한 정서와 행태를 나타내는 불특정 다수 정도로만 가정하자.
그 가정하에, 그들이 공유하는 그 정서와 행태는 무엇이며 왜 심형래가 선택되었는가.

우선, 다수가 모여 집단이 되어 발현할 수 있는 규모와 형태의 힘을 지향하고 동경한다.
황박 때의 국익 330조나 줄기세포 원천기술, 무궁화 꽃길, 과학에 조국이 어쩌고저쩌고, '디워'의 대한민국 CG 기술 등이 그러한데, '디워'의 성공이 심형래 개인의 경사에 머무르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국운으로까지 이어져 헐리우드에 나아가 싸우기 위해 다함께 힘을 모아주어야 할, 그런 상황이 되어 버린다.
대한민국이라는 전체 집단의 이익이 곧 절대선으로 인정된다.
국익이 된다면 논문조작 쯤은 눈감아줘야 하는 사소한 문제인 것이고, 헐리우드에서 돈을 벌어올 수 있다면 그깟 서사구조쯤  허술해도 아방가르드라고 우기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복잡하게 돌아왔지만 그럼 결국 전체주의이고 파시즘 아닌가.

황빠는 곧 심빠, 디빠.. 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건 아니지만 그 중에는 상당한 교집합 영역이 있을꺼라 생각된다. 혹자는 황박의 줄기세포는 쌩구라였고 심형래의 '디워'는 엄연히 실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유사하다.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생각하면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로 이분하는 자체가 말이 안되지만 적어도 예술적인 성취와 흥행 성적을 분리해서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상 '디워'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낙제점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반면에 흥행에서는 나름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문제는 여기서 '디워'를 지지하는 '그들'이 흥행 성적을 통해 그 예술적 가치까지 인정받고자 함이다.
관객이 많이 들었으니 좋은 영화로 인정해달라는 것. 나는 그것을 황박의 구라에 못지 않은 억지라고 본다. 충무로가 심형래 죽이기에 나섰다거나 포털의 음모라는 둥.. 서울대와 유태계 자본과 프리메이슨의 음모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파시스트적 집단은 전체의 이익에 반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개인은 철저히 타자화 되고 타자화된 대상에 대한 테러를 용인한다.
이송희일 감독이나 김조광수 대표, 허지웅 기자, 그리고 여러 블로거들에게 가해진 댓글 폭력을 보면 끔찍하다.
우리사회 내의 마이너리티들은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곧 죄악이 된다.
동성애자는 호모새끼가 되고, 노조나 양병거 등은 빨갱이가 되고, 극빈층은 졸지에 게으르고 무능력한 자로 매도된다.
아프간 피납자들을 향해 죽으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그들로 인해 손상될 대한민국의 이미지와 국력이 개개인의 생명보다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이런 폭력은 점점 당연시되고, 심약한 자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자기검열에 들어가게 되며, 종국에는 자유가 사라지게 된다.
파시즘이 두려운 건 이 때문이다.

어쨌든 심형래와 '디워'는 이들 집단에 의해 선택되었고 능동적 지지와 비호를 받았다.
대한민국 CG 기술, 헐리우드와의 대립구도, 한국영화의 자존심 등의 수식어가 국익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주었고, 코미디언 출신의 비주류 영화인이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성공한다는, 혹은 성공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영웅설화의 인물상에 해당되었으며, 이 영웅을 핍박하고 시련을 가하는 세력으로 '충무로'로 명명된 실체가 불분명한 집단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영웅설화 내 조력자 역할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힘이 보태어져 일종의 신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규정하는게 단지 '힘' 뿐이라면 그들은 왜 이미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기득권층에 기대지 않는 것일까.
앞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들을 결속시키는데는 어떤 요건을 갖춘 인물이 필요한 것 같다.
출신이 비주류여야 하고 도전과 성취의 드라마가 있어야 하고 그 성공의 결과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
기득권층은 이 인물이 영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 핍박을 가하는 무리로 그 역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이명박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도가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헤게모니 집단 내에 포지셔닝 함에도 불구하고 당내 계파로 보면 비주류인데다 기업인으로서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뭔가 석연치 않지만 그가 추진하면 7,80년대 고도 성장의 시기가 다시 돌아올 것 같다는 환상을 주입하려 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범여권을 지지하는 사람은 경선을 통해 누가 대표로 나오든지 범여권을 지지할 수 있을까.
진보가 아닌 것들이 진보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정책이 다르지 않으니 정당을 보고 선택할 수조차 없고 그리하여 결국 사람을 보고 뽑아야 하는 선거 풍토.. 그래서 우리는 아직 후진적이다.
김연아의 가슴 속에는 김연아 자신의 사연만 있으면 된다.
5천만가지나 되는 사연을 다 가지고 스케이트를 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황박의 지지세력은 디씨 인사이드나 브릭 등의 의혹에는 강하게 반발하고 저항하다가 각 저널의 논문 취소와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 등을 거치며 점차 소멸되었다.
심형래와 '디워'의 경우엔 어떠할까.
현재가 '디워'에 혹평을 한 평론가와 여러 블로거들에 대한 테러의 시기라면, 9월 14일 미국 개봉 이후 미국 시장 내에서의 흥행 성적과 현지 평론가와 관객의 반응이 이들 세력의 수명을 가름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될 듯 싶다.
미국시장에서도 뜻밖의 성공으로 에헤라디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헐리우드 유태계 자본이 심형래를 죽이려 한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다가 점차 해산하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황박의 논문이 다 조작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 그 많던 황빠들은 모두 사라졌을까.
파시즘에 물들기 쉬운 일단의 대중이 먼저 존재하고 그들의 기준에 적합한 어떤 인물을 매개로 전체주의적 폭력이 나타난다는 가정이 맞다면, 사라지지 않았다고 봐야한다.
아니면 이 모든 가정이 다 헛소리이고 심형래는 내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대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그 자신이 선동가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작금의 현상이 모두 그가 원했던 구도로 흘러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심형래 이후, 이들을 다시 규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될까.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세줄요약
1. 파시즘을 원하는 대중이 존재한다.
2. 특정 인물을 매개로 발호한다.
3. 앞으로는 누가 될까.


And




구니스, 인디애나 존스3 최후의 성전, 내셔널 트레져, 다빈치 코드의 공통점은..
보물찾기가 주요 제재인 어드벤처 장르영화이다.


1. 보물찾기 설정

구니스는 철거될 위기에 처한 마을을 구하고자 애꾸눈 해적 윌리가 숨겨둔 보물을 찾아 나서는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인디애나 존스3 최후의 성전 에선 나찌에 앞서 전설 속 성배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내셔널 트레져는 말 그대로 국보급 보물들을 누가 숨겨뒀다는 거고, 다빈치 코드 역시 새로운 해석으로서의 성배의 의미를 찾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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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 포드가 아직 젊었던 무렵,
여기서 어린 인디 역을 맡았던 배우가 요절한 리버 피닉스..

구니스에서 악동들은 우연히 보물지도를 손에 넣었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해 애꾸눈 윌리가 장치한 부비트랩에 번번히 걸려들고 개고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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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스의 한장면
가운데가 악동들의 리더-마이키 역의 숀 애스틴, 훗날.. 반지의 제왕의 샘.. @@


인디애나 존스3 최후의 성전도 마찬가지로 힌트를 잘못 해석했다간 사원 안에서의 세가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뿐더러 죽기까지 한다. 내셔널 트레져도 그렇고, 다빈치 코드에서도 보물의 위치와 성배의 의미를 밝히기까지는 여러가지 다양한 암호를 풀어야 한다.

모두가 숨기기/찾기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물론 숨기는 과정은 잘 안나타나지만..


2. 보물지도와 미로 설계자의 심리

숨기려면 아예 아무도 찾지 못하게 제대로 숨겨놓고 관련된 모든 흔적을 없애든가..
일부러 숨겨놓고 또 그것을 찾기 위한 복잡한 힌트를 따로 만드는 것은 대체 어찌된 연유란 말인가.

추측컨대, 이러한 보물찾기 구도는 대개 세가지 경우로 분류가 가능할 듯하다.

첫째, 은닉자 스스로 나중에 찾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패스워드를 잊어버렸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입력해두는 질문/답변 같은 거라고나 할까..
혼자 숨겨놓고 기억하기 위한 방법치고는 너무 거창하다.

둘째, 특정인에게 비밀을 전달해야 하는 경우
아웃사이더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밀을 공유하거나 전수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술된 암호.

셋째, 불특정 다수를 향한 유증
자신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훗날 누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적절한 요건을 갖춘 누군가가 접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보물찾기 설정은 대부분 위의 두번째와 세번째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왜? 첫번째는 드라마가 재미없어지니까.
그런데..

이쯤에서 적절한 문제제기 - 도전자는 보물찾기 시스템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3. 훼손된 미로

보물찾기에 나선 도전자를 추격하는 후발 주자가 있을 때, 후발주자는 선행 주자가 패스한 포스트까지는 별다른 노력없이 무임승차가 가능하다.
한번 통과한 관문은 계속 열려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애시당초 미로 설계자가 의도했던 두번째와 세번째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

다시말해 보물찾기를 설계한 사람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해 뚫린 관문이 그 다음 도전자에게는 다시 닫혀야 한다는 뜻이다.

구니스를 보자.
악동들을 뒤따르는 악당 세 모자는 앞에서 악동들이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고 지나간 자리를 보며 흠.. 이런 장치가 있었나보군.. 하며 지나가면 그만일 뿐이다. 악보대로 정확히 연주하지 않을 때마다 무너져내리는 동굴 바닥이 그 뒤에 지나가는 악당들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인디애나 존스3 최후의 성전에서 나찌들은 어떠했는가.
신 앞에 무릎을 꿇어 거대한 칼날을 피하고 신의 이름대로 징검다리를 건너고 사자의 머리에서 몸을 던져 길을 발견한 건 인디애나 존스였고, 나찌 일당은 별 어려움 없이 그 뒤를 따라 성배가 놓여진 곳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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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얘네들이 다 떨어져 죽고 다음 도전자가 여기까지 오면..
국부들이 원했던 건 그런게 아닐낀데..

심지어 다빈치 코드에서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파피루스가 용매로 찬 앰플 속에 숨겨져 있어 자칫 한번의 실수만으로도 그 보물찾기 시스템은 아예 게임오버가 되도록 되어 있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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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깨먹으면 그냥 끝나는거다.


4. 왜 미로는 복구되지 않는가

보물찾기 시스템을 꾸민 설계자의 의지대로라면 모든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일종의 자격을 얻어야 기꺼이 숨겨진 보물 내지 비밀을 넘겨주겠다는 것인데, 정작 영화 속에서는 위에 나열한 것처럼 그런 철저함이 없다.

영화에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 허술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시스템을 리셋시키기 위해서는 장치가 영구기관에 의해 효율 100%로 동작하거나 아니면 관리자가 있어야 한다.
영구기관이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저절로 움직인다는 설정을 들이밀었다가는 이야기의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신의 의지가 개입하게 된다. 관리자 내지 운영자를 두기 위해서는 언제가 될지 모를 최후의 승자를 위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명을 갖거나 대를 이어가며 비밀을 수호하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
두 경우 모두 불가지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야기 구조가 유치해질 수 있으므로 작가는 시스템의 리셋 여부에 애써 무관심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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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영구 없다니까..

둘째, 모든 암호를 풀어내고 보물찾기 설계자의 트릭을 극복한자만이 승자로서의 자격을 얻는다.
모든 도전자에게 시스템이 초기화되어 악당들도 머리를 써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면 그들도 주인공과 마찬가지의 자격이 생기게 되고, 주인공이 모든 것을 독식하기 위한 명분이 약해진다.

셋째, 주인공은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설계자의 의지를 이해하게 된다.
마지막에 마이키가 애꾸눈 윌리와 시공을 초월하는 모종의 교감을 통해 소년에서 어른으로의 통과의례를 마치는 것이나, 무너지는 사원 안에서 인디애나 존스가 성배에 대한 물욕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 내셔널 트레져의 그 보물들이 숀빈 일당에게 넘어가지 않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접수해야만 했던 것 모두 주인공만이 그 관문을 거치며 보물찾기 시스템을 설계한 자(해적, 국부, 신..)의 뜻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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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쉽지 않았을 그 한걸음..


5. 그래서 어쩌라고..

앞으로 나올 영화들에서는 보물찾기 시스템의 설정이 좀 더 그럴싸해졌으면 좋겠다.
왜 굳이 그런 어려운 장치들을 동원하여 복잡한 트릭을 만드는가와 그런 장치들이 주인공 일행을 위한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파괴되는 것이 과연 이치에 합당한 이야기인가에 대한 고민이 좀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더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가진 영화를 만나보고 싶다.

비주얼이 중요하지 그까짓 설정에 뭐 그리 심오한 의미를 담으려 하냐면 할말 없지만.. 깨갱..







세줄요약

1. 보물을 숨기는 자의 심리를 고려하여
2. 각종 트릭은 다시 고려될 필요가 있다.
3. 아님 말고.



And




국민일보 쿠키뉴스에서 주최한 맞장토론, '디워를 보는 우리의 모습과 시각' 을 보고..


1. 디씨인사이드

디씨인사이드(이하 디씨)는 대개 막장으로 통한다.
하나의 글을 읽는 중에도 그 글이 이미 다음 페이지로 휙휙 넘어갈 정도로 많은 글이 올라오고, 그래서 댓글을 달아도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대개의 글은 어떤 사유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언어배설에 가깝고, 자칫 디씨의 생리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낚시글에 걸려 퍼덕거리기 쉬운, 그런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씨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음은, 이른바 그 찌질거림 속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자정하는 모습을 보여왔을 뿐더러, 최근 몇년간의 주요한 몇몇 이슈들에 대해 먼저 오프라인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간혹 등장하는 개념글-디씨인 스스로도 인정해주는-이 보여주는 그 내공의 만만찮음과 개념글을 개념글로 알아보는 그 안목 때문 아닐까.

그렇기에 막장이라는 천대를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여러 찌라시 기자들에겐 영감의 원천이고 기사의 소스이며, 이번 토론회처럼 '누리꾼'을 대표하는 선수를 추출하기 위한 표본집단이 되기도 한다.


2. 진중권

나는 진중권이라는 인물을 '미학 오딧세이'와 '호모 코레아니쿠스', 안티조선, 지승호의 인터뷰, 그리고 최근의 '100분 토론'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이런저런 것들을 종합해서 판단하건대, 진중권은 상식적인 사람이다.
이건 뭐 논리가 옳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의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이는 진중권이 마냥 못마땅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죽했으면 반박할 꺼리를 찾지 못해 그 태도를 붙잡고 늘어질까.

지난번 100분 토론과 이번 맞장토론의 모습을 보면 진중권은 마치 토론 자체로 어떤 종류의 미학을 실현하려는 듯 하다.
그가 언급한 일부 네티즌의 패거리 문화와 패악질을 100분 토론 후 그의 블로그에 온전히 재현하였고, 이번 맞장 토론을 통해서는 블로그 대문에 언급했던 '아그들'이 정말 초딩 수준임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아무래도 진중권은 그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매체-인터넷, 블로그, TV, 라디오 등-을 통해서 모종의 대위법을 꾸미는 듯하다. 껄껄.


3. 패널 선정의 캐안습

이뭐병.
이건 수준 미달 정도를 넘어서 정말이지 안구에 쓰나미 작렬이다.
개념도 없고, 말빨도 없고, 게다가 토론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에티켓조차 갖추질 못했다.
엄연히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을 공개석상에서 ㅇㅇㅇ씨라고 부르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디씨, 특히 영갤러들은 그동안 몇몇 개념글들에 의해 그 찌질함이 일종의 위악으로 간주 내지 보호되어왔다.
이번 토론에 나온 패널들이 영갤을 대표한다면 그것은 그 찌질한 본질이 까발려진 것에 다름 아니며, 진짜 고수들은 나오지 않았다, 따로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현실 도피적이고 키보도 지향적인 이미지 형성으로만 이어질 뿐이다.

디씨영갤이 그토록 개무시 해온 '듀게'에서도 이제는 대놓고 영갤러들을 쓰레기 취급할 듯하다.


4. 다시 '디워'로

이번주 필름2.0 (no.349) 에서 김영진 편집위원이 '디워'에 대해 다시 한마디를 했다.
" ... <디워>가 B영화의 해방감을 준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한국에서 이영화는 블록버스터로 소비됐다. 나쁜것은 나쁘다고 일단 말해야 한다. 그걸 인정하고 나서 상황을 바라봐도 늦지 않다. 이 지점에서 <디워>지지자들은 한국의 영화문화에 상당히 극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결국 나쁜걸 나쁘다고 말한 걸 가지고 생긴 시비 아닌가.
그럼 나쁘지 않다는 얘기를 하면 될 것을..

나는 얼마전 100분 토론을 통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진중권이 유식한 척해서 기분이 나빴던가? 소위 먹물이 잘난 척해서 배알이 뒤틀렸던가?
오호,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난 오히려 몰랐던 걸 알게 돼서 나름 기분이 좋았더랬다.
누군가 '디워'에서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떤 아름다움 내지 재미를 찾아 설명해준다면 나는 그에 대해서도 기분좋게 무언가를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아직까지 '디워'가 좋은 이유를 설명하는 깔쌈한 글을 읽어보질 못했다.






세줄요약

1. 허접한 패널들이 나와서
2. 진중권한테 발리고
3. 디씨는 진짜 막장이 됐다.



And




신정아씨로 시작된 학력위조 불길이 쉬이 꺼지지 않고 계속 번져 나가는 기세다.
아무 생각없이 저런 한심한 것들.. 하면서 다시 나를 돌아보니 그리 쉽게 내뱉을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뭐 어디가서 학력을 속이고 다녔단 건 아닌데..


1. 나는 학벌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가

나는 대졸이다.
서울에 본교가 있지만 특이하게도 이과대, 공대, 의대, 체대 등이 수원에 내려가 있는 학교를 졸업했다.
캠퍼스의 이원화 구조는 다른 이들로 하여금 소위 '분교'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이 곳 졸업생들 중 재학시절 누군가에게 분교가 아니라 복수 캠퍼스라는 개념을 항변했던 기억 한번쯤 없는 이는 아마 없을꺼라 생각한다.

사실 분교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행정적으로도 지방 캠퍼스를 두고 있는 타교의 본교/분교 구분이 모교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는 어떤 법적인 정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울과 달리 수원 학생들의 학생증은 총장이 아닌 학생처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고, 굳이 차별화하자면 입학식은 서울 학생들까지 수원에 내려와서 한다는 거나, 동명의 학과가 중복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도였는데 그 비슷한 경우가 타교에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해서 목에 핏대 세워가며 설명하는 내 스스로도 왠지 비굴하단 느낌이 없지 않았다.

사실 '분교'가 아님을 외쳤던 그 억울함과 절박함의 정도는 내가 '분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멸시와 우월감에 비례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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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그런 것에 별 신경쓰지 않고 그냥 '분교 맞아요' 하며 웃을 수 있었지만..
나 말고도 주변에는 여전히 그런 종류의 편견과 집단적 자의식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 우리과는 취직이 최우선이고 취직이 안되면 최후의 선택으로 대학원을 가는 이들이 꽤 있었다. 물론 정말 학문을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준비한 이들도 있지만 그런 이들은 대개 서울대나 KAIST 등으로 대학원 진학을 하거나 진작부터 관심있는 랩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취직이 안돼서 그대로 대학원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었던 건 사실상 정원미달이었다는 뜻이다. TO는 지방대에서 우리 학교로 진학해 오는 학생들로 채워졌다.

학교 수준 떨어진다며 지방대 출신을 무시하는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대개 취직을 못해 진학한 원생이었다.


2. 학벌은 실력을 대변하는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는 고졸부터 학사, 석사에 해외 박사 학위를 가진이까지 다양한 학력의 사람들이 섞여있다.
이 중에는 석사 학위를 가지고서도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도저히 솔루션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당최 대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맞춤법을 구사하는 사람도 있고, (개정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읍니다'란 말인가. 책을 읽기는 하는걸까) 반면 고졸임에도 무척이나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배웠던 것 중에 지금 회사에서 필요한 지식이란 게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졸업장 때문에 입사하면서부터의 출발선이 달라서 그렇지, 만약 최종학력과 무관하게 동일 선상에서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지금 조직내 상하관계가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퇴사하고 없는, 무능하기로 소문났던 그 책임연구원은 재직 당시에도 술자리에서 자기가 석사출신임을 어찌나 강조했었는지..
 

3. 학력은 학력(學歷)인가, 학력(學力)인가

위조를 해서라도 갖춰야 했을 정도로 거짓 학위가 필요했던 이들에게 학력은 무엇일까.
단지 시작할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거짓학력으로 만들어 낼 권위가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둘 다?


4. 왜..

인구 대부분이 농업 본위의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 실용에 필요한 지식은 집안 내에서 전수가 가능했고, 배움은 그야말로 순수한 학문으로 간주되었으며, 먹고 살기에 충분한 노동력과 생산성이 확보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 세대에서 배우지 못한 한(恨)이 많은 것은 신식 학문이 예전의 한학(漢學)처럼 뜬구름 잡는 철학적 교육이 아닌, 보다 실용과 실질을 위한 학문이었으며, 그로 인해 배운자들과의 경쟁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경험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식 세대에 대해 교육열이 높았던 건 다른 민족보다 자식 사랑이 유별나서 그런게 아니고 배움은 곧 힘이라는 등식이 학습되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정상적인 근대의 시기를 거쳐 오지도 못했고 그래서 근대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다.
유교적 관습을 제대로 떨쳐내지도 못한 채 아직까지 사회규범으로 남아 장유유서를 요구하고,
제도화된 배움의 기회를 가졌었단 이유만으로 누구는 교수님, 판사님, 의사선생님으로 불리우며 공동체 내에서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지니고, 어떤이들은 경비아저씨, 기사아저씨, 파출부아줌마로 불리며 자연스레 낮은 자리를 강요받는다.

이는 단지 과거와 지금까지만의 일일까.


5. It's the education, stupid...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고 또 점점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사교육과 조기 교육 열풍이 과열되는 건 그 자체로도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배움의 기회조차 세습된다는 관점에서 이 사회의 기본 토대를 흔드는 위협요소임에 틀림없다.
지금처럼 학력이 학력(學力)으로 권위를 갖고 그 권위가 권력이 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는 교육의 기회가 세습된 다는 것은 곧 신분과 계급이 세습됨을 의미한다.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잡은 상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법적 장치를 만든다 해도 학력위조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여입학제라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 시기는 이 사회가 자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학벌에 기댄 권위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는 곳이 되고 난 이후여야 할 것이다.



세줄요약
1. 우리 사회는 학벌이 곧 권위가 된다.
2. 그런 상식이 먼저 바뀌어야 학력 위조가 사라질 것이다.
3. 앞으로가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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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워'가 화제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고 앞으로 볼 계획도 없다.
하지만,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할 이 거대떡밥을 그냥 넘어가기가 너무 아쉬워 급기야 블로그를 개설하고 수많은 포스팅 속에 나도 한마디 거들려고 한다.


1. 취향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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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뢰매 포스터(HVS)

 어렸을 때,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6학년 때였을까, 여름방학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친구들이 영화보러 가자고 찾아와서.. 같이 보고 온 영화가 '우뢰매'였다.
어린이대공원 옆에 붙어있는 어린이회관인가.. 에서 상영했었고, 보고 나오는 길에 그 어린 마음에도 영화의 유치함이 어찌나 분하고 스스로 수치스러웠는지 나중에 엄마 친구분이 방학동안 무슨 영화 봤냐고 물어봤을 때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혔던 기억이 새롭다. (그분 따님은 그 때 뮤지컬 영화 '애니'를 봤다고 들었다.)

코미디언으로서의 심형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막상 그가 출연하는 꼭지를 보고 있자면 웃음이 터지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나 공공연히 심형래보다는 김형곤이나 김병조, 주병진을 더 고급의 희극인이라 생각하고 또 다른이들에게도 그리 말하고 다녔던 것도 사실이다.

속물근성의 씨앗이었을까.

비슷한 감정으로, 그 이후 아직 홍콩영화가 국내영화보다 비교우위에 있었던 90년대 초까지도 난 주성치라는 배우와 그의 영화에 대해 철저히 무시했고, 버스에서 기사아저씨가 트롯트나 네버엔딩지루박메들리 같은 걸 틀어 놓았을 때면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양 괴로와했었더랬다.


2. 고급문화/하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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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필요한 식견이 부족하단 걸 느낀건 소위 예술영화들을 찾아보면서부터였다.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서 정성일이 리뷰한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면서 솔직히 고백컨대 졸.았.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봐도 그게 예술인지 모르는,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까막눈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런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나름 미학은 물론이거니와 철학적인 공부와 사고를 요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이는 취향의 문제라기보다는 얼마만큼 보고 해석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읽은 여러 다양한 방면의 책도 있었지만, 여러 평론가들(물론 일부 사이비를 제외한)의 글도 큰 도움이 됐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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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나름 고급문화의 맛을 보고 난 뒤에야 B급 정서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편견없이 수 있었다. '소림축구', '쿵푸허슬'을 통해 나름 B급 무비를 결산하고 메이저로 진입한 주성치의 전작들을 비로소 낄낄거리며 볼 수 있었고, '이나중 탁구부'의 위악을 배꼽이 떨어져 나가라 즐길 수 있었고, 트롯트에 대해서도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었다.

그 층위의 문화가 갖는 고유의 정서와 재미가 있음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는.. 요컨대, 고급문화는 고급문화대로, 하위문화는 하위문화대로 무엇을 즐겨야 하는지 나름의 기준이 생긴 셈이다.


3. 심형래의 영화들

'우뢰매'로부터 '영구와 공룡 쭈쭈', '티라노의 발톱', '파워킹', '드래곤 투카' 등, '용가리' 이전까지 심형래가 만들어 온 영화들은 노골적으로 B급 정서와 형식을 지향하고 있음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용가리'에 이르러 심형래는 더 이상 마이너일 수 없는 규모의 영화에 도전한다. 심감독은 메이저 시장에서 메이저 규모의 영화로 인정받고자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극장 미개봉 부문 비디오 렌탈 순위 1위도 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위안받을 수 있는 규모의 영화가 아님을 누구보다도 심형래 감독 스스로 절실히 느끼지 않았을까. 심형래 혹은 영구아트무비 나름대로 '용가리'의 실패를 분석하고 '디 워'에 반영했으리라 생각되며, 그렇게 보강된 부분이 'CG'인 모양이다.

'디 워'를 옹호하는 측이나 비판하고 있는 측 모두 플롯의 부재, 빈약한 스토리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인 것으로 보아 'CG'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4. 그리고 '디 워'

다시 '디 워'로 돌아와서,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디 워'를 두고 평단은 혹평 일색이었고, 심형래 측은 코미디언 출신이기 때문에 평가절하되었다 항변하고, 이후 인터넷은 정말로 전쟁이다.

'디 워'는 어느 쪽인가.
웰메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블럭버스터인가, 아니면 수백억원을 들여 만든 B급 무비일 따름인가. 그것도 아니면 블럭버스터급 규모로 만들어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방학중인 어린이와 괴수물 매니아를 타겟으로 하는 새로운 포지셔닝의 영화로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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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의 혹평은 메이저 시장을 타겟으로 한 영화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완성도조차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인 것이고, 그렇다면 영화를 본 수백만 관객이 바보냐는 일부 '디워빠'들의 항변은 창작물에 대한 미추 판단이 흥행성적과 관계한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비롯한다.

괴수물 장르에 플롯이 뭐 그리 중요하냐 하는 이들도 있지만, 줄곧 '쥬라기 공원', '반지의 제왕', '킹콩' 등을 들먹이며 보여준 심형래의 자신감으로 볼 때, 심형래 스스로 '디 워'는 B급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확실하다.


5. 감독 심형래에 대해

'심형래 어록'이란 이름으로 그간의 심형래 인터뷰를 모아 링크한 글이 돌고 있다.
비주류 영화인으로서 그가 받았을 수모와 멸시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전체 인터뷰 맥락에서 한 문장만 인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오해의 여지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쎈' 발언들이다. 영화는 모르겠지만 그 표현의 담대한 수준만 놓고 보자면 동급 최강의 수준이다. 어찌 보면 이번 소동은 심형래 감독의 혀끝에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차라리 그가 '디 워'에 대해 조금 더 겸손하게 발언하고, 다른 영화감독이나 작품들을 깎아 내리지 않고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해 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진정 메이저 시장에서 인정 받고 싶었다면 마이너 바닥에서라도 연출이나 기타 영화제작에 대한 실력을 키우고 나서, 지금 개봉한 '디 워'보다 내공있는 '디 워'를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주성치에 대한 편견을 고쳤던 것처럼 지금 이 시점에서 영화감독 심형래를 인정할 수도 있었을텐데.

'디 워'에 내려진 비판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서 차기작에 반영하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그의 길을 가든가는 심형래 감독이 판단할 일이다. 그가 계속해서 감독을 하겠다면 다음 영화에서는 한결 더 나아진 완성도를 가지고 만나보게 되길 바라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디 워'에 들어간 제작비가 그리 싼 수업료는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세줄요약
1. '디 워'는 B무비가 아니다.
2. 마이너가 아닌 것 치고는 후졌다는 평이다.
3. 심형래 감독이 다음엔 더 잘 하길 바라지만 그닥 믿음직스럽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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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8. 13.
m8928 님의 초대를 구걸하여 tistory에 블로그를 개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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