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분류 전체보기 (4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ARCHIVE

LINK







0.

1997년 5월의 어느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거짓말처럼 왼쪽 발목이 디디지도 못할 정도로 새큰거렸다.
전날 술먹고 들어오다 발을 삐끗했겠거니, 또 필름이 끊어졌나, 술 좀 줄이고 이제 건실하게 살아보자..
쉽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오래갔다.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가 류마티스 진단을 받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진이었다.

두달이 채 못돼서 염증은 오른쪽 발목에 이어 양 무릎까지 번졌고, 통증은 점점 심해지는데다 급기야 나 혼자서는 걷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더니, 염증이 골반쪽까지 올라오고 나서는 몸을 뒤집는 것조차 내 의지대로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누운채로 몸을 옆으로 돌려 깡통에 소변을 봐야했고..



1.

K박사가 아직 원장이던 당시.. 예약하면 초진 받기까지 3~4년을 기다려야 한다던 H대학 병원 류마티스 내과를 어찌어찌 연줄을 동원하여 급하게 찾아가서야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나마 초기에 발견해서 아직 관절의 강직이 시작된 것은 아니고, 내 경우엔 병의 증상 자체도 척추 강직보다는 말단 관절의 염증이 더 먼저 나타난 것이라 했다.

퉁퉁 부은 무릎 관절 속으로 바늘을 꽂아 굵은 주사기 여섯개 분량의 염증을 뽑아내고.. 무릎과 발목에 스테로이드를 주사하고.. 알약으로 된 스테로이드와 살라조피린, 그리고 MTX라는 약을 처방받고.. 그렇게 퇴원해서는 하루종일 집안에서 보내는 생활이 시작됐다.

하필 그 때는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가을 학기엔 복학할 예정이었던, 그럴 무렵이었는데, 이놈의 무릎은 조금만 돌아다녀도 염증이 생겨 며칠을 누워서 꼼짝 안하고 지내야 했고, 결국 어떻게든 그 해에 복학하려던 계획은 포기해야 했다.



2.

몸이 아픈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정작 미치고 환장할 노릇은 방구석에 쳐박혀 세상 돌아가는 걸 그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뭔가 분주하게 약속이 많은 스무살의 설레임 언저리에 있는 청춘들은 삐삐와 핸드폰 덕분에 만날 사람도, 만나서 해야 할 일도 많았고, 아직 IMF 사태가 닥치지는 않았을 때였던지라 개나 소나 외국으로 나갔다 오는게 유행처럼 되어가고 있었고, 여자 동기들은 사회초년생 특유의 오바스런 직장인 티를 내면서 제법 화장이 능숙해져 가던..

따지고 보면 군생활 내내 시간이 아깝고 그래서 더 초조하고 그랬던 것도, 급변하는 세상이 날 기다려주지 않고 혼자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막막한 느낌 때문이었고, 그래서 제대하고 나서 그걸 따라잡겠다고 학원이며, 아르바이트며..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덤벼들었던건데, 그 모든 계획과 의욕이 틀어지면서 그 때 가진 욕심과 열의만큼, 어쩌면 그 이상 나는 좌절했었더랬다.

불과 1년 늦춰진 것 뿐인데..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르려 한 적도 없지 않았지만 그 다음해에는 멀쩡한 몸으로 복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와 의심으로 고민과 걱정이 더 많았고, 다들 각자의 생활에 바빠 연락이 뜸해지는 친구들을 향한 피해망상과, 길에서 만난 고등학교 친구조차 알아보질 못할 정도로 변해버린 내 외모는 대인기피로 이어졌고,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누적되기를 1년여.



3.

턱관절에 생긴 염증 때문에 공황장애를 겪고 나서
나는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