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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 워'가 화제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고 앞으로 볼 계획도 없다.
하지만,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할 이 거대떡밥을 그냥 넘어가기가 너무 아쉬워 급기야 블로그를 개설하고 수많은 포스팅 속에 나도 한마디 거들려고 한다.


1. 취향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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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뢰매 포스터(HVS)

 어렸을 때,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6학년 때였을까, 여름방학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친구들이 영화보러 가자고 찾아와서.. 같이 보고 온 영화가 '우뢰매'였다.
어린이대공원 옆에 붙어있는 어린이회관인가.. 에서 상영했었고, 보고 나오는 길에 그 어린 마음에도 영화의 유치함이 어찌나 분하고 스스로 수치스러웠는지 나중에 엄마 친구분이 방학동안 무슨 영화 봤냐고 물어봤을 때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혔던 기억이 새롭다. (그분 따님은 그 때 뮤지컬 영화 '애니'를 봤다고 들었다.)

코미디언으로서의 심형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막상 그가 출연하는 꼭지를 보고 있자면 웃음이 터지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나 공공연히 심형래보다는 김형곤이나 김병조, 주병진을 더 고급의 희극인이라 생각하고 또 다른이들에게도 그리 말하고 다녔던 것도 사실이다.

속물근성의 씨앗이었을까.

비슷한 감정으로, 그 이후 아직 홍콩영화가 국내영화보다 비교우위에 있었던 90년대 초까지도 난 주성치라는 배우와 그의 영화에 대해 철저히 무시했고, 버스에서 기사아저씨가 트롯트나 네버엔딩지루박메들리 같은 걸 틀어 놓았을 때면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양 괴로와했었더랬다.


2. 고급문화/하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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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필요한 식견이 부족하단 걸 느낀건 소위 예술영화들을 찾아보면서부터였다.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서 정성일이 리뷰한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면서 솔직히 고백컨대 졸.았.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봐도 그게 예술인지 모르는,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까막눈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런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나름 미학은 물론이거니와 철학적인 공부와 사고를 요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이는 취향의 문제라기보다는 얼마만큼 보고 해석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읽은 여러 다양한 방면의 책도 있었지만, 여러 평론가들(물론 일부 사이비를 제외한)의 글도 큰 도움이 됐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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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나름 고급문화의 맛을 보고 난 뒤에야 B급 정서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편견없이 수 있었다. '소림축구', '쿵푸허슬'을 통해 나름 B급 무비를 결산하고 메이저로 진입한 주성치의 전작들을 비로소 낄낄거리며 볼 수 있었고, '이나중 탁구부'의 위악을 배꼽이 떨어져 나가라 즐길 수 있었고, 트롯트에 대해서도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었다.

그 층위의 문화가 갖는 고유의 정서와 재미가 있음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는.. 요컨대, 고급문화는 고급문화대로, 하위문화는 하위문화대로 무엇을 즐겨야 하는지 나름의 기준이 생긴 셈이다.


3. 심형래의 영화들

'우뢰매'로부터 '영구와 공룡 쭈쭈', '티라노의 발톱', '파워킹', '드래곤 투카' 등, '용가리' 이전까지 심형래가 만들어 온 영화들은 노골적으로 B급 정서와 형식을 지향하고 있음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용가리'에 이르러 심형래는 더 이상 마이너일 수 없는 규모의 영화에 도전한다. 심감독은 메이저 시장에서 메이저 규모의 영화로 인정받고자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극장 미개봉 부문 비디오 렌탈 순위 1위도 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위안받을 수 있는 규모의 영화가 아님을 누구보다도 심형래 감독 스스로 절실히 느끼지 않았을까. 심형래 혹은 영구아트무비 나름대로 '용가리'의 실패를 분석하고 '디 워'에 반영했으리라 생각되며, 그렇게 보강된 부분이 'CG'인 모양이다.

'디 워'를 옹호하는 측이나 비판하고 있는 측 모두 플롯의 부재, 빈약한 스토리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인 것으로 보아 'CG'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4. 그리고 '디 워'

다시 '디 워'로 돌아와서,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디 워'를 두고 평단은 혹평 일색이었고, 심형래 측은 코미디언 출신이기 때문에 평가절하되었다 항변하고, 이후 인터넷은 정말로 전쟁이다.

'디 워'는 어느 쪽인가.
웰메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블럭버스터인가, 아니면 수백억원을 들여 만든 B급 무비일 따름인가. 그것도 아니면 블럭버스터급 규모로 만들어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방학중인 어린이와 괴수물 매니아를 타겟으로 하는 새로운 포지셔닝의 영화로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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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의 혹평은 메이저 시장을 타겟으로 한 영화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완성도조차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인 것이고, 그렇다면 영화를 본 수백만 관객이 바보냐는 일부 '디워빠'들의 항변은 창작물에 대한 미추 판단이 흥행성적과 관계한다는 잘못된 가정에서 비롯한다.

괴수물 장르에 플롯이 뭐 그리 중요하냐 하는 이들도 있지만, 줄곧 '쥬라기 공원', '반지의 제왕', '킹콩' 등을 들먹이며 보여준 심형래의 자신감으로 볼 때, 심형래 스스로 '디 워'는 B급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확실하다.


5. 감독 심형래에 대해

'심형래 어록'이란 이름으로 그간의 심형래 인터뷰를 모아 링크한 글이 돌고 있다.
비주류 영화인으로서 그가 받았을 수모와 멸시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전체 인터뷰 맥락에서 한 문장만 인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오해의 여지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쎈' 발언들이다. 영화는 모르겠지만 그 표현의 담대한 수준만 놓고 보자면 동급 최강의 수준이다. 어찌 보면 이번 소동은 심형래 감독의 혀끝에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차라리 그가 '디 워'에 대해 조금 더 겸손하게 발언하고, 다른 영화감독이나 작품들을 깎아 내리지 않고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해 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진정 메이저 시장에서 인정 받고 싶었다면 마이너 바닥에서라도 연출이나 기타 영화제작에 대한 실력을 키우고 나서, 지금 개봉한 '디 워'보다 내공있는 '디 워'를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주성치에 대한 편견을 고쳤던 것처럼 지금 이 시점에서 영화감독 심형래를 인정할 수도 있었을텐데.

'디 워'에 내려진 비판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서 차기작에 반영하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그의 길을 가든가는 심형래 감독이 판단할 일이다. 그가 계속해서 감독을 하겠다면 다음 영화에서는 한결 더 나아진 완성도를 가지고 만나보게 되길 바라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디 워'에 들어간 제작비가 그리 싼 수업료는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세줄요약
1. '디 워'는 B무비가 아니다.
2. 마이너가 아닌 것 치고는 후졌다는 평이다.
3. 심형래 감독이 다음엔 더 잘 하길 바라지만 그닥 믿음직스럽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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