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탈이 일탈이기 위해선 먼저 일상이 있어야 한다.
지독한 일상으로 돌아와 무지하게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직장 상사는 기술적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도 못하고
그래서 늘 판단과 의사결정이 늦고, 그리하여 그 결과는 엉망인 인적, 시간적 리소스 배분에
죽어나느니 오로지 아랫것들이다.
점점 내 인생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위기감과 절박함.
문제 중 하나는 이런 부조리를 현실로 인정하고 오로지 예스만을 외치는 이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의 경쟁을 강요하는 조직은 그들의 손을 들어줄 것이고,
효율이라는 것을 따지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는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암울한 예감.
스물 언저리의 치기는 내 작은 운동으로부터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큰 뜻을 지탱하였으나
다른 이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욕심이며 만용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스케일을 작게 하여
내가 속한 회사, 조직의 문화를..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던 것 역시
애시당초 내 깜냥엔 어림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성공하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 어쩌면 순전히 운빨인지도 모르겠다.
조직의 리더는 이제 슬슬 나에게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요구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위에 있어왔던 그 무능한 사람들처럼
획일적인 통제방식과 근대초 산업화 시기의 업무강도를 이끌어내길 바라고 있다.
그런 모습에 대한 비판을 공유해왔던 파트원들을 향해
나는 과연 얼만큼의 융통성과 용인의 묘를 발휘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체념하고 기성의 질서를 받아들이는건 아닐까.
..
2.
불쑥..
화양연화를 다시 보았다.
그게..
속물스러움과 위선의 산물이었다면
홍상수의 영화를 봤어야 했겠지만,
그렇다고 내 안의 속물근성을 완강하게 부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몇번 등장하는 이 골목 장면에서 종종 인물과 카메라 사이에 창살이 배치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꽃같은 시기라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아직 오지 않은게 아니라면,
내 경우엔 고등학생 때부터 군입대 전까지의 20대 초반 언저리였음에 틀림없다.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말랑말랑한 머리를 가지고,
닥치는대로 세상에 부딪혀보고 내 운명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아직 사람들에게 정을 쏟아붓는 걸 아까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던,
취중엔 정말 진담만을 토해내고 아직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던 그 시절.
가끔 그 시절을 까닭없이 돌이키거나
아니면 제멋대로 불쑥 떠오르거나 하는 건,
그 무렵에 듣던 노래가 어디서 흘러나올 때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거나 감상에 젖는 건
아마 그 때가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터.
..
3.
내 일탈은 결국 그 시절의 기억을 미처 다 떨쳐내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는 또 다시 일탈을 꿈꿀 것이고
그 기저에는 그 무렵 그 때 가졌던 자유롭고 건강했던 정신을
다시 되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지도.
그래서 고맙고..
암튼..
가벼운 글을 쓰겠다고 하고선
이런 칙칙한 잡생각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말로는 바쁘다면서 아직 덜 힘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