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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25
    파시즘을 원하는 대중 4




소위 '빠'를 거느릴 수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황우석이나 심형래는 내 기준에서는 도저히 심취할 수 없는 사람들인데, 도대체 왜 그토록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 있는지 그게 계속 궁금했었더랬다.
황박 사태 이후 제일 만만한 썰이 인지부조화 이론이 되어놔서 많은 이들이 이를 들먹이곤 하지만 어떤 블로거의 포스팅에 따르면, 인지부조화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행위의 저질러짐, 소위 커미트먼트(commitment)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심형래의 '디워'에 대해서는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 가능한 경우가 훨씬 더 적을 것이다. 영화 보는데 들어간 돈 몇천원을 커미트먼트로 보기엔 좀 멋적지 아니한가.

가정을 뒤집어 보았다.
어느 출중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있어 그 능력으로 '빠'를 동원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선동가 역할의 인물을 필요로 하는 일단의 잠재적 무리가 먼저 존재하여 어떤 인물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차라리 이게 말이 되는 것 같다. 심형래는 그의 의지로 '심빠'와 '디빠'를 양산한 게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군중들에 의해 간택되었다고 해석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조직화되었거나 실체가 뚜렷한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비슷한 정서와 행태를 나타내는 불특정 다수 정도로만 가정하자.
그 가정하에, 그들이 공유하는 그 정서와 행태는 무엇이며 왜 심형래가 선택되었는가.

우선, 다수가 모여 집단이 되어 발현할 수 있는 규모와 형태의 힘을 지향하고 동경한다.
황박 때의 국익 330조나 줄기세포 원천기술, 무궁화 꽃길, 과학에 조국이 어쩌고저쩌고, '디워'의 대한민국 CG 기술 등이 그러한데, '디워'의 성공이 심형래 개인의 경사에 머무르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국운으로까지 이어져 헐리우드에 나아가 싸우기 위해 다함께 힘을 모아주어야 할, 그런 상황이 되어 버린다.
대한민국이라는 전체 집단의 이익이 곧 절대선으로 인정된다.
국익이 된다면 논문조작 쯤은 눈감아줘야 하는 사소한 문제인 것이고, 헐리우드에서 돈을 벌어올 수 있다면 그깟 서사구조쯤  허술해도 아방가르드라고 우기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복잡하게 돌아왔지만 그럼 결국 전체주의이고 파시즘 아닌가.

황빠는 곧 심빠, 디빠.. 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건 아니지만 그 중에는 상당한 교집합 영역이 있을꺼라 생각된다. 혹자는 황박의 줄기세포는 쌩구라였고 심형래의 '디워'는 엄연히 실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유사하다.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생각하면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로 이분하는 자체가 말이 안되지만 적어도 예술적인 성취와 흥행 성적을 분리해서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상 '디워'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낙제점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반면에 흥행에서는 나름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문제는 여기서 '디워'를 지지하는 '그들'이 흥행 성적을 통해 그 예술적 가치까지 인정받고자 함이다.
관객이 많이 들었으니 좋은 영화로 인정해달라는 것. 나는 그것을 황박의 구라에 못지 않은 억지라고 본다. 충무로가 심형래 죽이기에 나섰다거나 포털의 음모라는 둥.. 서울대와 유태계 자본과 프리메이슨의 음모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파시스트적 집단은 전체의 이익에 반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개인은 철저히 타자화 되고 타자화된 대상에 대한 테러를 용인한다.
이송희일 감독이나 김조광수 대표, 허지웅 기자, 그리고 여러 블로거들에게 가해진 댓글 폭력을 보면 끔찍하다.
우리사회 내의 마이너리티들은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곧 죄악이 된다.
동성애자는 호모새끼가 되고, 노조나 양병거 등은 빨갱이가 되고, 극빈층은 졸지에 게으르고 무능력한 자로 매도된다.
아프간 피납자들을 향해 죽으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그들로 인해 손상될 대한민국의 이미지와 국력이 개개인의 생명보다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이런 폭력은 점점 당연시되고, 심약한 자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자기검열에 들어가게 되며, 종국에는 자유가 사라지게 된다.
파시즘이 두려운 건 이 때문이다.

어쨌든 심형래와 '디워'는 이들 집단에 의해 선택되었고 능동적 지지와 비호를 받았다.
대한민국 CG 기술, 헐리우드와의 대립구도, 한국영화의 자존심 등의 수식어가 국익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주었고, 코미디언 출신의 비주류 영화인이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성공한다는, 혹은 성공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영웅설화의 인물상에 해당되었으며, 이 영웅을 핍박하고 시련을 가하는 세력으로 '충무로'로 명명된 실체가 불분명한 집단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영웅설화 내 조력자 역할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힘이 보태어져 일종의 신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규정하는게 단지 '힘' 뿐이라면 그들은 왜 이미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기득권층에 기대지 않는 것일까.
앞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들을 결속시키는데는 어떤 요건을 갖춘 인물이 필요한 것 같다.
출신이 비주류여야 하고 도전과 성취의 드라마가 있어야 하고 그 성공의 결과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
기득권층은 이 인물이 영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고난과 시련의 시기에 핍박을 가하는 무리로 그 역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이명박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도가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헤게모니 집단 내에 포지셔닝 함에도 불구하고 당내 계파로 보면 비주류인데다 기업인으로서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뭔가 석연치 않지만 그가 추진하면 7,80년대 고도 성장의 시기가 다시 돌아올 것 같다는 환상을 주입하려 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범여권을 지지하는 사람은 경선을 통해 누가 대표로 나오든지 범여권을 지지할 수 있을까.
진보가 아닌 것들이 진보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정책이 다르지 않으니 정당을 보고 선택할 수조차 없고 그리하여 결국 사람을 보고 뽑아야 하는 선거 풍토.. 그래서 우리는 아직 후진적이다.
김연아의 가슴 속에는 김연아 자신의 사연만 있으면 된다.
5천만가지나 되는 사연을 다 가지고 스케이트를 타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황박의 지지세력은 디씨 인사이드나 브릭 등의 의혹에는 강하게 반발하고 저항하다가 각 저널의 논문 취소와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 등을 거치며 점차 소멸되었다.
심형래와 '디워'의 경우엔 어떠할까.
현재가 '디워'에 혹평을 한 평론가와 여러 블로거들에 대한 테러의 시기라면, 9월 14일 미국 개봉 이후 미국 시장 내에서의 흥행 성적과 현지 평론가와 관객의 반응이 이들 세력의 수명을 가름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될 듯 싶다.
미국시장에서도 뜻밖의 성공으로 에헤라디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헐리우드 유태계 자본이 심형래를 죽이려 한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다가 점차 해산하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황박의 논문이 다 조작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 그 많던 황빠들은 모두 사라졌을까.
파시즘에 물들기 쉬운 일단의 대중이 먼저 존재하고 그들의 기준에 적합한 어떤 인물을 매개로 전체주의적 폭력이 나타난다는 가정이 맞다면, 사라지지 않았다고 봐야한다.
아니면 이 모든 가정이 다 헛소리이고 심형래는 내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대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그 자신이 선동가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작금의 현상이 모두 그가 원했던 구도로 흘러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심형래 이후, 이들을 다시 규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될까.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세줄요약
1. 파시즘을 원하는 대중이 존재한다.
2. 특정 인물을 매개로 발호한다.
3. 앞으로는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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