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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공교롭게 놀란의 배트맨 연작을 모두 극장에서 보게 되는 걸 보면 사실은 좋아하는건지도 모르겠다.

개봉에 즈음하여 여기저기서 스포일러성 글들이 스멀대기 시작하더니, 사무실에서도 인터넷에서 뭘 좀 읽었는지 아는척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어 겨우 자제시키고,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바로 예매. 수영 끝나고 11시 15분 왕십리 CGV IMAX에서 관람. 끝나니까 2시 7분.

스포일러라는게 사실 그닥 대단한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극의 전개와 이해에 관여하는 어떤 반전 요소를 미리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스포일링 하는 그 행위 자체의 무례함과 그 뜨악함에서 오는 불쾌감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 고의로 그러거나 몰라서 그랬거나 당하는 입장에서 화딱지 치미는 건 마찬가지. 스포일링 당한 최악의 경험은 올드보이 관람 도중에 오대수가 일식집에서 미도와 처음 조우하는 순간 앞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친구에게 물었던 말. 쟤가 딸이야? 여하간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그런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늦은 시간임에도 관람을 강행.


1.

다크나이트 때 죄수의 딜레마 설정이나 하비 덴트의 정의가 어떻게 투페이스로 변화하는가 등의 묘사를 보며 나름 꽤나 무거운 주제를 던져준다 싶었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까지 다 보고난 뒤의 감상은.. 그런 것들은 사족이고 결국 메인은 브루스 웨인의 성장기가 아니었나 하는 그런.

비긴즈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박쥐를 페르소나 삼고, 부모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뒤섞여 자경단이라는 생뚱맞은 형태이긴 해도 어쨋든 고담시에 대한 아버지의 의지를 계승하던 부분. 다크나이트에서 정의의 수호자 역할을 하비 덴트에게 맡기고 은퇴할 수 있었으나 조커의 농간으로 안티히어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그리고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의 결말까지 보면 결국은 브루스 웨인의 성장통 이야기.


2.

그렇게까지 하면서 고담시를 지켜야 했던 배트맨의 사명도 잘 이해가 안되기는 하지만 - 도대체 왜? 민초들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 살부(殺父)의 통과의례를 가질 수 없는 웨인에게 씌워진 아버지의 유훈? 어쩌면 초법적 행위 자체에 대한 애착? - 그보다 더 이해가 안되는건 고담시를 파괴하지 못해 안달이 난 각종 빌런들. 어느 한 사회를 망가뜨리는 건 이런저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정책이 제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잘못된 결정을 이끌거나 그런 멍청한 인물을 자리에 앉히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을, 이렇듯 순수하게 도시제거 자체를 목적으로 그 정도 기획을 한다는건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닐런지.

차라리 Why so serious?라고 말하고 왜 계획을 세우고 사느냐던 조커의 멘탈이 더 그럴듯하다.


3.

베인의 선동과 민중의 봉기는 섬뜩하면서 지리멸렬하다. 민심이 천심이라거나 닥치고 정치 식으로 피플 파워를 긍정,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대중이란 결국은 우중이기 쉽고 뛰어난 선동가에 의해 인민재판같은 광기를 보일 땐 이보다 더한 악몽이 어디 있으랴 싶은게 황빠 심빠의 난이 오래지 않은 탓일터. 그런 기억을 돌이켜보면 결국 시민들의 힘으로 가능한 건 도대체 무엇인지 회의할 수 밖에 없고..

히어로물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이유는 그렇다고 이 세상이 소수의 몇몇 초인들에 의해 바뀌거나 지탱된다고 믿고 싶지도 않기 때문인데, 이런 류의 생각이 자칫 엘리트주의와 선민적 사상에 물들기 쉬운 때문일 것이다.

8년간의 평화가 끝나고 베인의 등장과 함께 배트맨이 다시 나설 수 밖에 없었다거나, 블레이크가 처음의 소신을 접고 법에 의하지 않는 정의 실현의 길을 선택하는 것 모두, 아니 애시당초 고담이라는 도시의 존재 자체가 피플 파워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어쩌면 그게 실상 현실에 가장 가까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4.

브루스 웨인의 성장기로 보건,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의 자정 기능을 누가 해야 하는가의 관점으로 보건 어쨌든 삼부작의 훌륭한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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